[디지털타임스 김위수 기자] 코로나19발 경기침체에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는 적자를 본 정유업계가 지금이 불합리한 제도를 손질할 적기라며 입을 모으고 있다. 불황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만큼 일시적인 지원보다는 제도개선을 통한 경쟁력 제고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1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대한석유협회는 정유업계를 대표하는 차원에서 정부에 추가적인 석유수입부과금·판매부과금(석유수입부과금) 납부기한 연장을 건의하지 않을 예정이다. 단 일부 정유사들이 별도로 세금유예를 요청할 가능성은 있다.
추가 세금유예가 없다면 정유사들은 이달 6월분과 9월분을 함께 내게 된다. 지난해 기준 석유수입부과금 월평균 징수액은 3000여억원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발 석유제품 수요 급감으로 정유업계가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4~6월분 석유수입부과금의 납부 기한을 각각 3개월씩 연장해줬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정유산업의 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금 납부 기한이 다가왔다. 일부 정유사들은 석유수입부과금에 대한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추가 유예는 무산됐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지난 7월 4월분과 7월분의 석유수입부과금을, 지난달 5월분과 8월분을 납부했다.
이는 당장의 세금 납부 연장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근본적인 지원책 마련이 더 절실하다는 정유업계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금 유예가 당장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몇달 더 미뤄놓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4월분 유류세, 석유수입부과금을 한꺼번에 납부해야 했던 지난 7월 정유사들이 추가로 납부한 세금은 2조원이 넘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유예된 세금은 언젠가 내야 하기 때문에 업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는 현 상황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유사들은 이 참에 일부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먼저 석유 중간제품 중유에 붙는 개별소비세 부과체계를 손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유는 원유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기 때문에, 정유사들은 중유를 수입해 석유제품 생산 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행법상 중유는 완제품으로 간주돼 개별소비세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연합(EU) 등 주요 66개국 가운데 석유제품 생산공정 원료로 쓰이는 중유에 대해 과세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LPG(액화석유가스)에 붙는 석유수입부과금의 역차별도 국내 정유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LPG를 생산할 때에는 원유수입에 따른 관세 2%, ℓ당 16원의 석유수입부과금이 발생한다. 반면 수입 LPG에는 관세 2%만 부과돼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월 중유에 대한 조건부 면세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김위수기자 withsuu@dt.co.kr
국제유가 하락에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부진, 여기에 세금 부담까지 겹치면서 정유사들의 실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경기도 고양시의 한 주유소 모습. 박동욱기자 fuf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