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핵대국 뒤엔 `싼첸`이 있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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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핵대국 뒤엔 `싼첸`이 있었다
박영서 논설위원
1960년 11월 5일 '둥펑(東風) 1호'로 명명된 지대지 미사일이 발사됐다. 중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최초의 미사일이었다. '둥펑 1호'가 목표를 명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첸쉐썬(錢學森)은 눈물을 글썽였다. 중국의 로켓 및 핵무기 역사에 새로운 장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천재과학자 첸쉐썬은 상하이(上海) 자오퉁(交通) 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193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항공이론을 공부하다가 역학으로 바꿨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그는 미국 미사일 연구 부문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다. 1950년 신중국이 성립되자 귀국을 결심했으나 미국 정부는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FBI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차라리 그를 죽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5년 동안 가택 연금을 당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미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저우 총리는 "단 한 명의 중국인(첸쉐썬)이 귀국하는 것만 성사되면 협상은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1955년 그는 고향 항저우(杭州)로 돌아왔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의 포로가 된 5명의 미군 조종사와 그가 맞교환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중국과학원 역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이 되었다. 마오쩌둥(毛澤東)에게 15년의 준비 기간과 든든한 지원을 요구했고 마오는 이를 승낙했다. 그는 '둥펑 1호' 발사에 이어 1964년 원자폭탄 실험, 1967년 수소폭탄 실험을 지휘했고 1970년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둥팡훙(東方紅) 1호' 발사를 성공시켜 약속을 지켰다.

첸쉐썬을 포함해 핵물리학자 첸싼창(錢三强), 로켓역학 전문가 첸웨이장(錢偉長)을 중국에선 '싼첸'(三錢)이라고 부른다. 세 사람 모두 성이 모두 '첸'(錢)이기 때문이다. '첸'은 돈이란 뜻이다. 성이 '돈'을 뜻하지만 이들은 돈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과학으로 조국을 부흥시키겠다는 애국심은 넘쳤다.

첸싼창은 칭화(淸華)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국비장학금으로 프랑스에 유학, 파리에서 퀴리 부부의 지도로 원자물리학을 전공했다. 1947년 귀국해 모교의 교수가 됐다. 한국전쟁은 그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됐다. 한국전쟁에서 미 공군에 처절하게 당하는 중국군을 보고 군사력의 현대화·과학화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핵대국 뒤엔 `싼첸`이 있었다

첸웨이장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응용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공대 제트 추진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이때 첸쉐썬과 함께 근무했다. 1946년 귀국해 후학을 지도했다. 그는 중국의 로켓공학 발전에 업적을 세웠다.

최근 미 국방부가 공개한 '연례 중국 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핵탄두 200여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러시아와 비교해보면 격차가 크지만 핵전력 증강 속도가 빠르다. 보고서는 "이 정도면 중국은 3대 핵전력 완성에 근접한 것"이라며 "10년 뒤에는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이 최소 2배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핵전력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보여준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은 변변한 개인화기도 없이 '방망이 수류탄'에 의지해서 싸웠다. 심하게 표현하면 '거지 군대' 였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중국은 꽤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1950년대 중국은 공업기술 기반 자체가 빈약한 농업국이었다. 마오는 "핵을 가지고 있어야 최소한 다른 나라들한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소련의 지원으로 국방기술을 발전시키려 했으나 관계 악화로 기술지원은 깨졌다. 결국 자력으로 해야했다.

공산당 정권은 해외에 있던 과학자들을 모국으로 불러들이는데 성공했고 이들을 특별 대접했다. 대신 "실패해도 우리가 책임진다. 비장하게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의 헌신으로 중국은 초강대국의 핵독점을 깨뜨렸다. 자신이 태어난 '인력거의 나라'를 핵대국으로 키운 이들을 보면 "과학자가 바로 애국자"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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