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전기요금 개편을 추진 중인 가운데 현행 전기요금 체계에 정부 정책으로 발생한 비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내걸고 석탄화력발전 규제와 탈원전 등을 추진하면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전기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에게 이를 정확히 알리고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주최로 열린 '2020 합리적 전기요금 체계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는 주택용·일반용·산업용 등 용도별로 운영되는데, 정부가 전기요금을 원가나 수급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물가안정, 기업경쟁력, 서민보호 등 정치적 요인에 따라 결정해온 결과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소비자에게 정확한 시그널을 주기 위해서는 발전비용과 정책비용에 따른 변화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요금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기본요금+전력량요금으로 구성된 이부요금체계에 조정요금 항목을 신설해서 도매가격 변화를 반영하고, 일정 주기별로 조정단가를 산정해서 반영해야 한다"며 "이번 정부 들어서 외부비용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가 안 되고 있는데, 원전사고위험비용이나 이에 따른 갈등비용도 현실화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박 위원은 "현재 정부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서 석탄화력발전을 제한하는 등 물량규제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런 규제비용도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게 맞는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박 위원은 "전기요금이 너무 낮으면 생산비용을 줄어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적정 이상으로 전기를 소모하게 해서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효율개선 투자를 제약하기도 한다"며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을 지속한다면 공급자가 손실보는 것은 시기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상요인이 발생한다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전기요금 고지서에 연료비 조정항목을 도입한 미국의 전기요금 체계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범조 KEI컨설팅 상무는 "미국의 경우 소비자들이 원가뿐만 아니라 에너지정책 방향에 따라서 부담하고 있는 비용들을 직접 알 수 있게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비용과, 재무적 측면을 보완하기 위핸 연료비 조정항목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이미 항공비 등에서 연료비 조정항목은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요금부담 변화에 따른 소비자들의 경험도 충분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토론문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그린뉴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 배출권 할당계획 등에 따라 기후비용은 몇 배로 늘어날 예정"이라면서 "기후비용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나중에 속았다고 생각하면서 재생에너지 보급 및 기후변화 대응에 반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전환의 모범국가인 독일의 전기요금에는 재생에너지 활성화 등을 위한 제세부담금이 절반 수준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진기자 jineun@dt.co.kr
요금조정이 지연됨에 따라 판매사업자의 재무 안정성도 저하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도별 유가수준과 한전의 영업실적 추이. <자료:한전, 에너지경제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