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기업 도움 받으며 뺨때리는 정부

성승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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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기업 도움 받으며 뺨때리는 정부
성승제 산업부 기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 코로나19에 따른 비상상황도, 대외경제 악화도 결국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선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공정경제 3법' 얘기다. 물론 아직 법안 시행까지는 국회 통과 절차가 남아 있다. 관련 법안은 20대 국회에서는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21대 국회를 176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 장악한 탓이다.

빠르면 내달 말 국회 통과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독소조항이라고 불리는 공정경제 3법은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말한다. 재계가 특히 우려한 조항은 다중대표소송제와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에 손해를 끼친 임원을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비상장기업 주식 전체의 100분의 1, 상장기업 지분 1만분의 1만 보유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 시 현재는 공정위만 검찰에 고발할 수 있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면 가격·입찰 담합 등에 한해 누구든 고발할 수 있는 법안이다. 검찰도 공정위 판단과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재계는 이제 공정위 뿐만 아니라 무시무시한 검찰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재계는 코로나19에 맞닥뜨린 최악의 경제상황을 고려해 법안 통과를 미루거나 수정안을 반영해 달라고 읍소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원안 그대로 의결했다.

정부가 전 세계 모델로 삼겠다고 자부한 K-방역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도 우려가 현실이 된 경우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최근 열흘 이상 세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다.지난 20일부터 29일까지 열흘 간 신규 확진자 수는 3077명이었다. 하루 평균 307명 이상이 감염됐다는 의미다. 2만명대 돌파가 코앞이다. 심각한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확진자로 병상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방역 당국 발표문을 보면 우리나라 감염병 전담병원 전체 1779개 병상 중 이미 76%가 사용 중이고 수도권 지역 즉시 사용 가능한 병상은 고작 15개 뿐이다. 급증하는 확진자 수를 감당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규모다.

결국 재계가 해결사로 나섰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SK, LG, 한화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사내 연수원을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로 내놓았다. 이들 기업이 지원한 임시생활시설은 삼성(290실), LG(300실), SK(321실), 한화(200실), 현대차(60실) 등 총 1000실이 넘는다. 또 이 곳은 모두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에서도 재계의 역할은 빛났다. 정부가 수도권에 대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시행 중인데 재계는 이보다 강력한 3단계를 이미 도입한 상태.

주요 대기업들은 업종 불문하고 필요 인원 퇴근 후 즉시 귀가와 10인 이내 회의 금지, 사업장 간 출장 금지, 회식 전면금지 등 자체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강화하고 있다. 재택근무 대상과 기간을 대폭 확대했고 출장 제한 등 이동 자제 조치도 엄격하게 시행 중이다. 재계가 해결사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구·경북 지역 중심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에도 연수원, 기숙사 등을 생활치료센터 또는 자가격리자를 위한 임시생활시설로 제공했다. 수십억 원대 성금은 물론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물품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혈액 부족 문제가 생겼을 때는 릴레이 헌혈에 동참하기도 했다. 최근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대해선 복구 지원금으로 또 수십억 원을 기부했고 자체 긴급지원단도 파견했다. 정부 입장에선 재계가 구세주나 다름 없었을 터다.

이제 정부에 묻고 싶다. 기업은 이익 추구가 목적이다. 자체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면 기업은 그만큼 더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기업은 그저 정부의 지침만 따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자체적으로 방역 시스템을 강화하고 연수원을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방역을 돕기 위해서다. 이렇게 기업의 힘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정부는 기업 옥죄기에 혈안이다. 기업들도 언젠가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성승제기자 ba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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