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정경부 차장
![[DT현장] 한국의사들 `위피` 닮아간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1302102269614001[1].jpg "[DT현장] 한국의사들 `위피` 닮아간다")
정보통신부는 2005년 독자 무선인터넷플랫폼과 관련 콘텐츠 산업을 육성·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국내 판매되는 모든 휴대전화에 위피 탑재를 의무화했다. 위피는 당시 심비안이나 윈도 모바일 등 해외의 다른 플랫폼과의 호환성을 배격하고 폐쇄성을 고집했다. 당장에 위피를 탑재하지 않는 외산 휴대전화와 해외 콘텐츠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2007년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이 등장하면서부터 폐쇄적 위피 플랫폼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구글이 애플의 iOS에 대항하는 개방형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선보이자, 세계 무선인터넷 플랫폼은 iOS와 안드로이드가 양분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위피는 그 뒤 조용히 사라졌다.
최근 국내 의료계가 '원격의료'에 반대하고, 의과대학 정원을 연간 400명 늘리는 것에 반발해 파업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문뜩 '위피'가 떠올랐다. 일찌감치 시작된 4차 산업혁명 바람과 함께 올해 1월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세계는 지금 비대면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100년 만에 한 번 올까말까 하는 감염병 팬데믹(대유행)에 원격 의료서비스가 크게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원격의료를 허용했고, 최근엔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했다. 이런 바람을 타고 텔라닥, 닥터온디맨드 등 원격 의료서비스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일본은 1997년 원격의료를 시범 도입한 뒤 지난 2015년 전면 허용했다. 2018년부터는 의료보험도 적용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부터 자국 환자들이 미국 의사한테 원격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고, 2016년 자국 내 원격의료를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에도 알리바바 헬스, JD헬스 등 원격의료 스타트업,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나라 의료·방역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임이 증명됐다. 세계 각국이 'K-방역'을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의료 기술이 세계적 수준임을 만방에 알렸지만, 정작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세계 각국 환자들에 제공할 순 없다. 원격 의료를 허용하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의료계 반발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면 의료사고가 크게 증가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동네 1·2차 의원들을 찾는 환자는 줄고, 3차 대형병원만 찾게 될 것이라면서 의료의 질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원격의료 서비스가 대면 의료 서비스만큼 기술적으로 정확하고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당뇨병, 천식, 고혈압 등 만성질환 환자들(주로 고령자들)이나 도서 산간 환자들이 매번 병원을 방문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의사와 상담하고,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어차피 중증 환자들은 당연히 병원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단계적으로 의료사고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원격 의료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조차 거부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에겐 의료계의 '제 밥그릇 챙기기'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여론 조사 결과, 국민 60% 가량이 원격의료에 찬성했다. 정부가 지난 2월 말부터 한시적으로 전화 등으로 원격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고령층이나 만성질환자들이 크게 만족했다는 사실도 국내 원격의료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고, 우물 안 개구리 마냥 당장 눈앞의 이익만 쫓는다면 우리 의료계도 '위피'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해외 원격의료 서비스가 등장해 국내 환자들이 그리로 대다수 떠나간다면, 위피처럼 국내 의료 서비스도 조용히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한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 "보건의료에서 경제적 논리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다." 그런 의사들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파업한다고 하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상 의사 수는 인구 1000명 당 2.4명으로 OECD 평균인 3.5명에 크게 못 미친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의사 수가 적은 나라는 폴란드와 콜롬비아 정도다. 현재 상황에서 의사 수가 늘어나면 정말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가. 연간 400명 정원 늘리는 것조차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김승룡 정경부 차장 sr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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