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이재용이 보여준 `말`의 무게

박정일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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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이재용이 보여준 `말`의 무게
박정일 산업부 차장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 투자를 멈춰서는 안된다." 지난 5월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도 평택캠퍼스에서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의 핵심 엔진 역할을 할 EUV(극자외선 노광장치) 공정 투자 발표 현장에 직접 찾아가 이 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다수의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을 곳간에 쌓아놓고 있을때, 이 부회장은 정 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각 사업장을 찾아가 미래 투자를 늦추지 말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시에는 단순히 빈말처럼 보였다. 실제로 과거 주요 대기업들이 정권 교체 직후 경제 살리기를 위한 다양한 투자계획을 내놓았지만, 실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존 투자에 조금 더 보태는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총수만이 가능한 '말'의 무게를 보여줬다. 2분기 삼성전자의 시설투자는 영업이익(8조1000억원)보다 많은 9조8000억원이었고, 상반기 전체 투자규모는 17조1000억원에 이르렀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무려 6조4000억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정말 어려울 때 미래를 위한 투자를 늦추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가 EUV와 같은 반도체 미세공정 '초격차' 쪽에 집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삼성을 만들어 낸 선대 회장의 행보를 보는 듯 하다.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전 종합기술원 회장)의 증언이 이를 증명한다.

권 상임고문은 1983년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이 '도쿄 선언'으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는 삼성이 반도체(사업)를 한다는 자체가 난센스 같은 일"이었다면서도, 그럼에도 이 같이 성공한 이유는 선대회장부터 이건희 회장까지 이어진 'commitment' 덕분이라고 단언했다.

1990년대 전문경영인 체제 시스템으로 100% 전환한 일본 기업들이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에 주저했던 반면, 삼성은 최고경영자층의 결단과 리더십으로 과감하게 도전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사업은 앞으로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권 상임고문은 조언했다.

이 같은 오너의 결단력은 지금의 삼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를 책임지는 경제성장의 핵심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검찰도 약속을 했다. 검찰권 남용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2017년 문무일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기소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외부 기구를 만들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수사심의위원회'였다.

이후 지난 2018년 제도 도입 후 지금까지 총 8회의 수사심의위의 결정이 있었고, 검찰은 모두 그 결정을 수용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 부회장에 한해서는 수사심의위의 권고에도 주저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수사심의위원 13명 가운데 10명이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나도록 검찰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이 소위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인 '스모킹건'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은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소 카드를 검토하는 것은 어쩌면 '개혁' 의지 보다는 여전히 강한 권위의식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이 몇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첫번째로는 코로나19 사태와 이후 이어지는 보호무역과 경기침체의 파고는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할 만큼 위협적이라는 점이다. 삼성의 성장 과정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위기에 이처럼 공격 투자를 할 만한 곳은 사실상 삼성전자 밖에 없다.

두번째로는 검찰이 스스로 한 약속을 어기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3년 전 스스로 개혁을 선언했던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소위 '먼지털이 식' 낡은 수사관행을 그대로 보여줬다.

삼성 임직원 110여명이 검찰에 430여회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이제는 검찰이 스스로 만든 견제 장치인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침묵하고 있다. 이미 권력 남용을 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한쪽은 약속을 지켰고, 다른 한쪽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려 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모든 국민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면, 이 부회장 역시 가진 부와 관계없이 평등한 국민이다.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죄가 없다면 오히려 검찰이 보호해줘야 하는 대상이다.

재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총수 부재로 삼성이 멈춰서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은 최소 2~3년을 미리 내다보고 조 단위의 투자를 해야 하는 만큼 총수의 결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검찰이 '자존심'을 세우려 일단 '잡아넣고 터는' 낡은 관행을 고집한다면, 10년 뒤에 어떤 역사의 평가를 받을지도 한번쯤 고민해보기 바란다. 미증유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아니면 말고 식 '주유소 옆 불장난'은 좀 위험하다.

박정일 산업부 차장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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