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前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양승함 칼럼] 입법독주의 종말](http://contents.dt.co.kr/images/202008/2020080402102269660002[1].jpg "[양승함 칼럼] 입법독주의 종말")
국회 18개 상임위원장 자리 모두를 차지하고도 야당과는 제대로 협의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 여당의 자세에서 21대 국회의 전도와 현 정부의 미래를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4·15 총선에서 여당은 뜻밖의 압도적 다수 의석(177셕)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것은 코로나19의 세계적 감염사태에 대해 안정적으로 대처하라는 민심의 발로였다. 물론 장외투쟁으로 20대 국회를 식물화시키고 막말로 정치를 저속화시킨 야당에 대한 응징이기도 했다. 당시 여당은 민심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었다.
특히 이해찬 대표는 당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열린우리당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며 자만하지 말 것을 당부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때만 해도 국회가 달라지려나 하는 실 날 같은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21대 국회는 원 구성에서부터 협치에의 기대를 허물어뜨렸고 입법만능주의적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됐다. 총선 민심은 야당과의 협치를 주도하라는 것이었지 독주하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참패했어도 재적 3분의 1이 넘는 의석수를 가진 야당이 적어도 국민을 그만큼은 대표하고 있으니 의견을 들어 보아야 하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열린우리당의 트라우마'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탄핵 역풍으로 당시 여당은 157석을 확보하여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여당으로서 단독 과반수를 차지했다. 고무된 여당은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입법안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보수세력은 강렬하게 반발했다. 오늘날 정치사회적 갈등과 국민적 분열의 진원이라고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그 후 열우당은 지지율이 급락했고 계파 간 갈등이 심해졌으며 2006 지방선거와 2007 대선에서의 참패로 소위 '폐족'의 위기를 맞았었다.
현재 여당이 정권을 장악한 것은 야당 시절 야당 역할을 잘해서라기보다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의 기회가 있었고, 4·15 총선에서의 대승은 코로나 사태와 지리멸렬했던 야당 때문이었다. 이러한 기회변수를 빼면 지금쯤 여당과 정부는 레임덕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조국사태 이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권력투쟁에 이어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청와대 비서진의 다주택 소유 등 레임덕의 징조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 상태의 입법 독주가 계속된다면 내년 서울, 부산, 울산 시장 보궐선거에서의 패배는 물론이고 차기 대선도 전혀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야당의 국회 전략 또한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번에 소수의 무기력을 뼈저리게 느낀 야당 일각에서 다시 장외투쟁을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은 오히려 여당의 입법 독주를 정당화시켜 주기만 할 것이다. 야당 투사론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소수인 야당은 어차피 입법을 주도할 수 없다면 타협과 협상을 주 전략으로 사용해야 한다. 철저한 조사와 분석·평가를 통해 여당 주도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이것을 국민에게 홍보해야 한다. 대국민 홍보의 최고의 장은 국회이다.
한마디로 입법 활동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통합당 윤희숙 의원의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은 열 번의 장외투쟁보다 훨씬 더 국민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갔을 것이다. 진정성과 함께 실력이 있는 국회 토론이야말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정치다. 국민이 바라보고 있으며 다음 선거에서 책임을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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