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選이 대한민국 바꾼다] 생활인을 위한 국회 가능하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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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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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選이 대한민국 바꾼다] 생활인을 위한 국회 가능하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이다. 예상했지만 쉽지 않은 여정이다. 현실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어 보니 생각보다 바쁘다. 이렇게 다들 '바쁨의 신'을 모시고 사는데 왜 국민의 퍽퍽한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까. 정치에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있다. 본질적인 것은 국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비본질적인 것은 국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 어쩌면 정치권이 비본질적인 것에서 정치의 본질을 찾으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분명한 건 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퍽퍽한 삶을 풀어주는 데 있다. 그런데 많은 정치인들이 비본질적인 것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정치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결구도를 만드는 한국정치의 구조가 문제다. 구조 자체가 정치인으로 하여금 비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 대결구도에서 정치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달콤한 유혹에 빠진다. 심각한 지경에 이른 정치인은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제 모두가 힘을 합쳐 정치를 본래의 영역으로 돌려놔야 한다. 정치는 본래 생활의 영역에서 풀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정치란 철학이 아니라 실천이다. 정치인은 정치적 실천을 통해 시민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정의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한다.

원내 300석 중 1석, 말 그대로 1인 정당이 활동하는 건 쉽지 않다. 혹자는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기엔 너무나 열악한 숫자가 아니냐 묻는다. 사실 국회의원 단 한 명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물론, 정치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 순 없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필요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변화의 시작점을 이끌어내기엔 충분한 숫자이다. 거대한 컨테이너선을 끄는 예인선처럼 말이다.

'작은 몸집'은 빠르게 전환되는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실제로 '재난기본소득', '코로나 뉴딜', '한반도 좋은 이웃국가론', '데이터 주권' 등으로 능력과 역할을 인정받았다. 뿌리 깊게 박혀있는 양당 대립 구도를 가로지르고 미래 의제를 제시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작은 몸집' 덕분이다. 이를 토대로 단순히 다수의 법안을 내고 의미 없는 정책들을 쏟아내기보다는 어떤 문제를 '부러뜨리는' 방식의 정치를 하고자 한다.

최근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사태로 세간이 들끓었다. 청년층의 취업난과 박탈감,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견고한 계급이 문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이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일자리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현재의 노동 구조는 완전히 전환될 수밖에 없다. 그 빈 공간을 플랫폼 노동자가 대체할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지금 정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제3의 노동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모든 노동이 플랫폼 노동으로 수렴될 것이다.

이런 전환적 사회에 쿠션의 역할을 하는 건 기본소득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 정도는 직업과 소득에 따라 나뉘었다. 대기업 근로자는 재택근무가 가능하지만, 그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수입 감소와 폐업을 걱정해야만 했다. 이제 우리는 기회의 공정을 넘어 결과의 공정을 논해야 한다. 여기서 사회 취약 계층이 사회적 위험에 직면했을 때, 그 충격을 덜어줄 수 있는 쿠션이 바로 '기본소득'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모든 정책은 친기업·친서민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친기업·친서민이 함께 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조정훈식 생활정치'는 친기업·친서민에 기반한다. 우리는 반서민적 정책을 깨뜨려야 하지만, 반기업 정서도 버려야 한다. 기업과 서민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전환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정치는 철학이 아니라 실천이며, 이념이 아니라 생활이다. 본래적 정치의 모습은 생활정치이다. 국민의 퍽퍽한 삶을 풀어주기 위해 생활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생활정치는 양당 구도라는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생활정치는 이 땅의 무기력하고 나약한 이들의 '고통'과 연대하여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훈훈한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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