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탁의 탁견] 地大物博의 나라, 미국과 중국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  
  • 입력: 2020-07-30 18:55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이우탁의 탁견] 地大物博의 나라, 미국과 중국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대학 1학년 동양사학입문을 배울 때 얘기입니다. 민두기(1932~2000) 선생께서 칠판에 커다랗게 이 네글자를 쓰시고는 앞으로 중국을 공부하면서 항시 머릿속에 떠올려보라고 했습니다. 말 그대로 '땅 넓고 산물이 많다'는 뜻입니다. 넓디넓은 땅에서 온갖 것들이 다 생산되고, 사람도 많습니다. 오죽했으면 1793년 영국 조지 3세의 사절단으로 중국을 찾은 조지 매카트니 경이 청(靑)의 건륭 황제에게 조지 3세의 친서와 함께 교역을 요구하자 건륭 황제의 답은 '응유진유(應有盡有:필요한 것은 모두 갖고 있다)'였겠습니까. 다른 나라(오랑캐)와 하는 무역이라고 하면 오로지 중국이 은혜를 베푸는 조공무역 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살짝 비틀어 보면 외부와 교류를 하지 않더라도 상당 기간 자립할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자원의 힘을 가진 나라가 바로 중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나라, 정말 무서운 얘기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세상의 중심이 바로 자기들이라는 세계관, 즉 중화사상, 천하(天下) 개념이 생긴 겁니다. 조공과 책봉 체제가 중국과 그 밖의 다른 나라를 연결했습니다.

이 단어를 적용할 수 있는 나라가 오늘날 지구상에 또 있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바로 미국입니다. 전 세계 무역의 중심이 바로 미국 시장이지만 실상 미국은 최악의 경우 다른 나라와 교역하지 않더라도 자립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만큼 없는 게 없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팍스 아메리카'라고 부르듯 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지대물박, 응유진유의 대표적인 나라, 미국과 중국, 우선 엄청나게 큽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러시아라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캐나다가 두 번째입니다. 그런데 두 나라를 지대물박의 나라라고 하긴 좀 어색합니다. 세계 3위와 4위의 면적(자치령 등 제외)을 다투는 나라가 바로 중국과 미국인데, 남한 면적과 비교하면 대략 97배에 달하고 한반도 전체로도 45배입니다. 모든 기후대에 걸쳐있고, 대륙의 다양한 지질과 지형 등이 펼쳐져 있습니다. 거기서 생산되는 광물 등은 이루 말할 수도 없겠지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떡하니 버티고 있는 두 나라의 존재감이 아주 크게 다가옵니다. 운 좋게도 두 나라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었는데,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와 없는 게 없는 풍부한 물산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중국과 미국은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4년 전 저와 대담집 '프레너미(틔움)'를 함께 펴낸 코트라의 박한진 박사가 소개해준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 기드온 래치먼의 의견인데,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는 2015년 9월 30일 자 칼럼에서 미국과 중국이 마치 서로 다른 운영체계를 가진 컴퓨터 같다고 일갈했습니다. 한마디로 양국의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라는 겁니다.

첫째 연속성과 주기성입니다. 미국은 연속적 사고체계를 갖고 있고 중국은 세계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되풀이된다는 사고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양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건국한 해(1776)로부터 따져서, 역사가 250년도 안 되는 나라입니다. 약간의 부침이 있긴 하지만 그 기간 미국은 대체로 발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국력이 커지고 부유한 방향으로 상당히 일관되게 갔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미국만큼 전쟁을 많이 한 나라도 없지만, 그 전쟁은 남북전쟁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국 영토 밖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미국은 계속 발전하는 연속성을 가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반면 중국은 세상이 다 아는 역사의 나라입니다. 흔히 5000년 역사라고 합니다. 인류역사상 최대 미스터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이 하나의 나라로 수천년간 뚜렷한 정체성을 유지해온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수많은 왕조가 흥하고 쇠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겪어왔습니다. 창업→수성→팽창→쇠퇴→몰락과 새로운 혁명으로 이어지는 주기적 흐름입니다.

두 번째는 보편성과 특수성입니다. 미국은 인간 평등의 가치관을 가지며 개인의 권리는 박탈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적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상징이며, 이는 세계적 가치관으로 발전했습니다. 반대로 중국은 특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맞는 경험과 처방이 중국에 맞으라는 법이 없고, 중국에 맞는 경험과 처방이 다른 나라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서구식 시장경제를 채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했습니다.

개인(individual)과 집단(group)의 개념도 다릅니다. 미국은 개인의 욕구와 동기, 권리를 강조해 이를 건국이념, 헌법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에선 개인의 권리보다는 전체 목표와 집단 이익을 더 중시합니다. 중국은 개인적인 주장이 많아지면 혼란이 생기고 이는 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춘추전국'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믿음입니다.

박한진 박사는 "이런 차이점은 각자 독특한 뿌리를 갖고 있어서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측면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두 가지 성질을 잘 통합하면 경쟁적 협력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심각한 대결국면으로 간다는 전망입니다.

요즘 미국과 중국이 연일 충돌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을 전격적으로 폐쇄 조치하자 중국도 질세라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닫아버렸습니다. 누가 더 잘못했다고 비난하기도 힘들 정도로 닮아가고 있는 미국과 중국입니다.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당시 정상회담을 취재했던 저는 태평양의 절반은 중국 것이라는 선언으로 들었습니다. 세계의 패권국, 미국 입장에서 어떻게 들리겠습니까. 아마도 세계의 절반, 아니 전체를 건 두 나라의 싸움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야 끝날 거 같습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양국의 대결은 향후 세계질서를 좌우할 중대 사변입니다.

지대물박은 고사하고 '지소인박(地小人博)', 그러니까 땅은 좁은데 사람만 많이 사는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나마 분단도 해소하지 못한 한민족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우탁 연합뉴스 전문기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