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일기장에 담긴 조선의 속살](http://contents.dt.co.kr/images/202007/2020073002102269061001[1].jpg "[논설실의 서가] 일기장에 담긴 조선의 속살")
역사책에 없는 조선사
이상호·이정철 지음 / 푸른역사 펴냄
조선왕조실록 말고도 조선은 엄청난 규모의 기록을 남겼다. 특히 조선의 유생들은 숱한 일기를 남겼다. 생활일기는 물론 서원을 세우는 영건일기, 관직일기, 여행·전쟁 일기, 심지어 유배일기도 있다. 민간 소장 기록유산을 수집·보존하는 안동의 한국국학진흥원에는 대략 3000점 정도의 이런 일기류가 보존돼 있다. 이 책은 이 가운데 20권의 일기를 바탕으로 조선의 일상을 길어내 조선의 사회상을 재구성했다.. 20개의 서로 다른 유생 일기에서 발췌한 단편적인 60여개의 에피소드에서 당시 사람들의 삶과 고충이 드러난다.
책은 일기가 다룬 소재에 따라 국가·공동체·개인 3부로 나뉜다. 여기에는 여느 역사책에서 보기 힘든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특히 지금 상황과 비교할 만한 에피소드가 눈에 띈다. '있는 자'들의 횡포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고을의 수령이 바뀔 때마다 착취는 더 심해져 '구관은 늘 명관'일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지금 상황과 비교할 만한 이야기도 있다. 당시 돌림병은 공포의 대상이어서 친척간이라도 매정했다. 병에 걸리면 지금까지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왔던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터부시됐다. 옛 사람들의 지혜도 돋보인다. 시집간 딸이 친정을 찾아 한 달 정도 머무는 '근친'(覲親)은 일종의 특별휴가였다. 이것이 어려울 경우 안사돈들이 동반해 중간에서 만나 회포를 풀었던 '반(半)보기'는 생활사의 좋은 예다. 부정과 꼼수가 판쳤던 과거 시험장의 천태만상도 흥미를 끈다.
이 책에는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유성룡의 '징비록'과 달리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없다. 유생들의 일기에서 뽑아낸 일상과 사건을 현대적 시각으로 풀어낸 책이다. 온갖 악전고투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피나도록 노력한 조선시대 미생들의 삶이 들여다보인다.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달달 외우던 '죽은 역사'가 아닌 '살아 숨쉬는' 역사를 만날 수 있어 반가운 책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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