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괜히 `빅테크`가 아니다

차현정 정경부 증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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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괜히 `빅테크`가 아니다
차현정 정경부 증권팀장
통장에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사는 것이 마침내 가능해졌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소비자 편의성을 높인다며 전자금융업자들의 영업 가능 범위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토스나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와 같은 간편결제 업체에 충전된 잔액 없이 물건을 산 뒤 후불결제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최대 30만원까지 '외상'으로 결제가 가능해진 건데 최대 500만원까지 충전할 수 있어 500만원짜리 TV를 산다면 일단 30만원 후불결제 후 나머지를 갚게 되는 구조다.

사실상 금융업을 영위했지만 느슨한 소비자보호 정책을 취했던 핀테크업체가 규제의 테두리로 들어오는 것이다. 금융위가 조만간 이 같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인 만큼 연내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다. 활력을 잃은 금융업계에 빅테크와 핀테크 주도의 혁신서비스가 등장해 메기효과를 일으킬 것이란 기대감도 동시에 번진다.

문제는 금융권 판도를 뒤흔드는 '빅테크'들이 규제를 회피하면서 시장 독점을 공고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월간 순사용자 1200만명의 네이버페이 사용자들이나 가입자수만 3000만명에 육박하는 카카오페이 사용자들이 신용카드 대신 이들 빅테크 페이로 쏠릴 유인도 크다. 일찌감치 카드업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게 됐다"고 노골적 불만을 표시하며 반발한 이유다.

액수 한도가 있긴 해도 사실상 신용카드식 사업이 허용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카드업계는 간편결제업계가 후불 결제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면 카드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별히 걱정하는 대상은 단기간에 간편결제 시장의 강자로 부상한 '공룡' 플랫폼 네이버와 카카오다. 더욱이 카드업계는 신상품의 혜택 총량이나 신규 고객 선물 가격까지 세세한 규제를 받는 데 비해 간편결제업계는 '혁신산업 육성' 명분으로 훨씬 느슨한 규제가 적용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간편결제업계에 차별적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종합지급결제사업자는 하나의 플랫폼에서 급여 이체, 카드 대금·보험료·공과금 납부 등 계좌 기반 서비스를 일괄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당초 금융당국이 50만~100만원 수준의 후불 한도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논의 과정에서 낮춰진 것으로 전해진다. 기존 카드업계가 '네이버와 카카오는 규제 없이 신용카드 사업에 진출한다'며 우려한 점이 반영됐다. 낮춰진 한도액에도 카드사들은 "후불경제에 대한 빗장이 풀리는 게 어렵지 액수는 언제든 올라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도 "신용공여 업무 기능이 없는 각종 페이업계에 신용카드업계의 고유업을 허용한 것인 만큼 긴장과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며 "특히 여타 핀테크와 네이버·카카오는 다르다. 금융업이 빠르게 장악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금융사 수준의 건전성 관리와 소비자 보호 규제 도입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은 곳곳에서 제기된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괜히 빅테크라 불리겠느냐"며 "30만원이라고는 하지만 핀테크 이용자수를 감안하면 새로운 대형카드사가 생기는 수준의 상당한 규모의 여신이 발생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리스크 관리 능력이 부족한 핀테크사로부터 건전성 문제나 소비자 보호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금융사 수준의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일정 부분 카드사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관리된다면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 측에선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에 따른 관리체계를 정비한다", "플랫폼을 통한 연계 제휴 영업의 규제는 보다 명확해진다"며 일축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카드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초년생 등이 편리하게 각종 페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지칠 만한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상황은 벌어졌고, 문제의 본질도 변했다는 사실에는 어느 쪽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특히 소비자들은 카드업계의 이런 태도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혁신의 노력을 등한시했던 카드업계의 책임도 크다는 평가다.

카카오나 네이버뿐 아니라 여타 많은 산업군에서 막대한 투자를 해가며 신사업확대에 뛰어드는 것은 이미 도래한 디지털 시대 이후를 대비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으로 읽힌다. 어쩌면 빅테크의 금융공습이 시작하기도 전에 더 거대한 파고가 들이닥칠 수도 있다. 그때까지 카드업계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하는 게 먼저 아닐까.

차현정기자 hjcha@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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