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전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빌랜드 추모 물결

멜라니 役으로 스타덤… 향년 104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두차례 수상
영화인 권익향상 '하빌랜드법' 족적
"할리우드 황금시대 대들보"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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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전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하빌랜드 추모 물결
1950년 3월24일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가 오스카 트로피 2개를 양 손에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했던 마지막 생존 스타이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차례나 수상한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사진)가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4세. 영화계와 팬들은 소셜미디어에 잇달아 추모글을 올리며 고인을 애도했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드 하빌랜드의 홍보 담당자인 리사 골드버그는 드 하빌랜드가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자연사했다고 밝혔다.

드 하빌랜드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 시민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1950년대 초반 이후 파리에서 거주해왔다.

드 하빌랜드는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영국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생후 3살 때 부모는 이혼했고, 드 하빌랜드는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다.

드 하빌랜드는 1935년 막스 라인하르트의 눈에 띄어 그가 제작한 영화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4년 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 해밀턴 윌크스 역으로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드 하빌랜드는 비비언 리가 연기한 스칼렛 오하라와 대비되는 성격을 지닌 멜라니 역을 차분하게 소화해 큰 호평을 받았다.

'캡틴 블러드'(1935), '로빈 후드의 모험'(1938) 등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드 하빌랜드는 '그들에겐 각자의 몫이 있다'(To Each His Own)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로 1946년과 1949년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8년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 훈장을,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각각 받았다.

드 하빌랜드는 거대 할리우드 제작사를 상대로 반기를 들기도 했다. 1943년 워너 브라더스가 계약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자신을 계속 묶어두려 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은 어떤 제작사도 배우의 동의 없이 계약을 연장할 수 없다며 드 하빌랜드의 손을 들어줬고, 이 판결은 '드 하빌랜드의 법'으로 불리기도 했다. 드 하빌랜드의 여동생은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서스픽션'에 출연했던 고(故) 조앤 폰테인(2013년 별세)이다.

영화계와 팬들은 소셜미디어에 잇달아 추모글을 올렸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조커' 역을 맡았던 배우 재러드 레토는 여러개의 트윗을 고인의 사진과 함께 올리며 고인을 애도했다.

레토는 "올리비아는 내 인생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고 나는 파리에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누렸다"고 회고했다. 레토는 드 하빌랜드가 1940년대 워너브라더스와 싸워 배우의 권리를 쟁취한 것에 특히 감사를 표했다. 밴드 '서티 세컨즈 투 마스'의 리더이기도 한 레토는 레코드사와의 계약 분쟁 당시 하빌랜드 법이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고인의 친구이자 동료인 배우 베티 데이비스는 생전 자신의 회고록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은 올리비아에게 영원히 고마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도 공식 트위터를 통해 "오스카를 두 차례 석권한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할리우드 황금 시대의 대들보였으며, 엄청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여기 우리 산업의 진정한 전설이 있다"며 고인의 젊은 시절과 최근 사진을 각각 한장씩 올렸다.

104세로 영면한 드 하빌랜드에 대해 미 CNN방송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병약한 멜라니가 막판에 숨을 거두지만 현실에서는 드 하빌랜드가 클라크 게이블, 비비언 리, 레슬리 하워드 등 동료 배우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오래 살았다"고 밝혔다.

김광태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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