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연구현장의 황당한 일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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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연구현장의 황당한 일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 사례1. 지난 1월 국내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A연구소는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에 밤낮은 물론 주말과 휴일에도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7월부터 공공기관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주 52시간 근무' 시행으로 인해 연구자들은 자신의 근무 시간을 초과하면 연구를 하다가 도중에 어쩔 수 없이 퇴근을 해야 한다. 만약 주어진 근무시간을 넘겨 일을 할 경우, 초과 시간에 해당하는 휴가를 별도로 주거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빡빡한 연구 일정 때문에 연구자에게 휴가를 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예외적으로 초과 근무 수당을 주면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A연구기관은 경상비가 넉넉지 않아 앞으로 연구자들이 초과 근무를 하더라도 수당을 계속해서 줄 수 없는 형편이고, 인력도 추가로 채용할 수 없어 주 52시간 근무가 연구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 사례2.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일부 출연연은 아직까지 정규직 전환 방식을 놓고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갈등과 대립이 장기화되고 있다. 노사 합의를 통해 정규직 전환을 마친 출연연 조차 기존 정규직과 전환을 통해 정규직이 된 직원 간 보이지 않는 반목과 불신이 불거지는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일부 출연연은 정규직 전환 직원을 별도 직렬을 묶어 관리하는 등 기존 정규직과 차별하고 있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출연연 연구현장의 갈등을 키우고 있다.

# 사례3.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채용 제도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블라인드 채용'으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연구직 최종 면접에서 중국 국적의 외국인 지원자가 합격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외국인 채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었지만, R&D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공공기관에 획기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국적을 포함한 지원자 개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긴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결국, 원자력연은 신원 조회 과정에서 보안상 이유로 외국인 지원자를 불합격 처리했다. '깜깜이 블라인드 채용'이 연구 수월성과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를 뽑는 데 오히려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세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다소 황당한 일이 실제 출연연 연구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은 R&D 특수성과 연구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다른 공공기관에 적용하고 있는 고용정책을 일률적으로 출연연에 무리하게 적용하면서 벌어진 촌극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이 정부가 얼마나 현장과 소통하지 않고 편향된 이념과 진영 논리에 갇혀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이를 밀어 붙이고 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누군가를 이를 두고 '불통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잘라 말했다.

물론,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계층 간 양극화 및 불평등 등으로 인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겠다는 이번 정부의 국정 철학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국민 모두가 다 함께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길 원하고 있다. 그런 국가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절절함이 이 정부를 탄생시켰고, 그 역할을 국민이 추운 겨울 촛불을 통해 부여했다.

최근에는 이런 국민들의 바람을 깡그리 무시한 일이 벌어져 우려스럽기만 하다. '인국공 사태'로 청년층의 분노를 샀는가 하면, 과세 중심의 부동산 대책으로 3040 세대에게 절망을 안겼고, 급기야 국민적 조세 저항에 직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의 '억지 춘향식 정책'이 국민의 분노를 불러 온 셈이다.

출연연 연구자들은 그동안 정부 정책에 순순히 따랐다. IMF 때 65세 정년을 61세로 줄였고, 2015년에는 임금피크제 도입 등 불안정하고 어려운 연구환경 속에서도 국가적으로 어려울 때 희생과 헌신을 기꺼이 감내해 왔다.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낙연 의원은 총리 시절 정책의 3대 원칙으로 정합성, 수용성, 실행력을 강조했다. 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이 과연 이 세 가지 원칙에 얼마나 잘 부합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으면서 현장에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출연연 연구자들이 바라는 것은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현장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연구자 중심의 '디테일한 정책'을 진정으로 원할 뿐이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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