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공시족 분노케한 정규직 전환

성승제 디지털전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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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공시족 분노케한 정규직 전환
성승제 디지털전략부 기자
평일 밤 늦은 어느 날. 오랜 만에 24시간 불을 켜 놓은 카페를 찾았다. 노트북과 평소 읽지 못한 책도 한 권 챙겼다. 웬걸, 빈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1층부터 3층까지 모든 좌석이 20~30대 초반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코로나19조차 무색했다. 빈 좌석을 찾는 척 하며 주변을 살폈다. 이들은 아랑곳 않고 노트북 강의를 듣거나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자리 하나가 비어 빠르게 노트북을 올려 놓았다. 좌석 왼쪽과 오른쪽, 앞쪽에 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공부를 하는지 슬며시 교재 내용을 곁눈질했다. 사회적 거리를 비웃듯 이 곳의 테이블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옆좌석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공무원 수험생'이란 것을 눈치 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주변에 단 한 사람도 먼저 자리를 뜨는 이들이 없었다. 누가 밤 늦은 시간까지 이들을 이곳에 붙잡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코로나19에도 왜 이곳을 찾고 있는 것일까.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하루 만에 글에 동의한 사람은 13만명에 육박했다. 국민청원에 동의한 이들은 대다수 공무원 수험생이며 그들 중엔 오늘도 밤 늦게 카페에서 공부에 열중할 젊은이들도 포함됐을 것이다.

청원 내용의 중심은 차별이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902명의 보안검색요원을 청원경찰 신분으로 바꿔 직접 고용했는데 여기에 알바생들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때문에 이는 더 큰 화제가 됐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22세에 알바천국 통해 보안요원으로 들어와서 이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서·연·고(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나와서 뭐하냐. 너희 5년 이상 (등록금과 시간을) 버릴 때 나는 돈 벌면서 정규직"이라고 썼다.

자신을 취준생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이 더위에 하루 12시간씩 3년째 공부하고 있다"며 "토익 980점까지 힘들게 만들었다"며 "더 이상 뭘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알바생도 정규채용이라니, 대학 학비 4000만원 내고 다닌 내가 너무 한심하고 바보 같다. 이런 게 평등인가"라고 토로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3년 연속 대학생이 꼽은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에 오른 직장이다. 젊은이들이 분노한 것은 공정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 때문이다. 그동안 청년들은 노년층에 치이고 기성세대에 밀려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가뜩이나 경기가 침체하는 상황에서 팬데믹 현상까지 겹쳐 청년들의 취업 문턱은 말 그대로 넘사벽이 됐다. 그리고 이는 점점 더 심화하는 추세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를 보면 올해 3월 15~29세 청년층의 고용률은 전년 대비 1.9% 하락했다. 연령별 인구비중을 고정한 고용률도 3.0%포인트 쪼그라들었다. 더 큰 문제는 고용 충격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KDI는 고용 충격이 올해 3분기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취업보장을 받지 못한 청년들은 더 다양한 스펙을 쌓는데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스펙을 쌓는데 써야 할 교육비용은 날로 늘어나는데 취업 문턱은 높아 돈을 벌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나서 정규직전환 공약을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 공약이 공정한 기회마저 빼앗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데 이를 방치하는 것은 더 큰 논란을 만들 수 있다. 가뜩이나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이미 많은 사회(?) 경험을 했다. '조국 사태'를 경험했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단기 일자리마저 잃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어디 이 뿐만인가. 정부재원 일자리는 60대 노년층에 밀려 이력서에 경력 활동 한줄 채워 넣는 것도 힘들어졌다. 과거엔 기업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턴제도를 도입했지만 이제는 그 조차 찾기 힘들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들이 청년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기는커녕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이젠 정부가 인정해야 할 때다. 카페에서 듣게 된 한 대학생의 말이 오랜 기간 머릿속을 맴돈다. "정규직 전환정책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일자리까지 줄어든다면 이는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차별과 차이를 정부가 진짜 모르는 것인지 궁금하다."

성승제 디지털전략부 기자 ba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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