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사랑의 불시착, 블루오션 북한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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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3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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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사랑의 불시착, 블루오션 북한
하재근 문화평론가
tvN에서 지난 2월에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뜨겁다. 일본 매체 '주간 SPA'는 최근 '3차 한류 열풍 물결은 이 작품 '사랑의 불시착'으로 완성됐다'는 내용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트와이스, 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진 3차 한류가 '사랑의 불시착' 열풍으로 정점을 찍었다는 이야기다.

과거 일본에서의 한류는 중년 주부들 사이에서 주로 나타났었다. 반면에 요즘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한류가 나타난다. 그러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한국이 트렌드의 중심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 일본 우익 혐한세력은 일반적으로 한국을 뒤처진 나라로 보는 80~90년대 시각에 멈춰있는데 반해, 젊은 층 사이에선 한국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 흐름이 나타나는 3차 한류 속에서 한국 최신 드라마들도 인기를 모으는데 그중에서 '사랑이 불시착'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겁다. 특히 이 작품은 50대 남성층에게까지 한류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가 현지에서 나온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인기몰이가 이어진다. 미국 매체 옵서버는 코로나19 사회적 격리 기간(3월21~27일) 동안 많이 시청된 넷플릭스 TV쇼 영화 순위에서 이 작품을 6위에 올렸다. 미국 PC매거진이 꼽은 '전 세계 OTT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순위에선 이 작품이 4위에 올랐다.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 접속이 늘어났는데 많은 미국인이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찾아본 것이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감상평도 찬사 일색이다.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이 올라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북한이다. 한국 재벌 상속녀인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다는 설정이다. 2008년에 한국 여배우가 인천에서 레저보트를 타던 중 방향을 잃고 북한 해안에 접근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는데 작가가 그 기사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북한 마을에 들어간 윤세리를 북한군 대위인 리정혁(현빈)이 보호한다. 리정혁은 북한군 총정치국장(군 서열 1위)의 아들로 최상위 엘리트 장교인데,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진다. 이런 설정에 세계가 열광한 것이다.

특히 북한 마을 풍경에 관심이 쏟아졌다. 북한은 주로 미사일 도발, 핵실험, 기괴한 느낌의 군중집회 등의 이미지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의 마을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이 묘사한 북한 풍경에 관심이 쏠린 것이다.

냉장고가 없어 김치움에 음식을 보관하는 모습, 전기가 수시로 끊겨 촛불을 쓰는 모습, 열차가 장시간 멈춰서 승객들이 노숙하는 모습 등이 그려졌다. 특권적 삶을 살아가는 평양 상류층의 모습도 흥미를 모았다. 한류에 빠져 한국드라마 설정을 줄줄 읊어대는 젊은 북한군이나, 한국 제품이 우대받는 장마당 풍경도 그려졌다. 작가가 여러 탈북자들을 인터뷰하며 고증에 공을 들였다고 해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북한 시골마을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공동체의 정이 살아있는 순박한 마을로 묘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방영 당시 북한 미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체제 자체를 미화했다기보다 북한 시골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을 동화처럼 표현했다고 봐야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저개발 사회 구성원들이 순박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건 북한 체제와 지배자의 폭압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 동화 같은 시골 풍경이 각박한 사회 속에서 코로나 우울에 빠져있던 사람들을 위로했다.

즉, 북한 사회 묘사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비현실적 시골마을 풍경에 위로 받은 것이 인기의 한 이유가 된 것이다. 북한이 서방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고 경제성장이 거의 멈췄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단절됐으니 호기심이 생기고 경제가 과거 시점에 멈췄기 때문에 우화적 상상의 대상이 된 것이다. 북한의 이런 기이한 풍경은 앞으로도 다른 콘텐츠를 성공시키는 소재가 될 수 있다. 북한 소재가 한류 콘텐츠의 블루오션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이한 한류 소재가 확보된 건 좋은 일이지만, 그 특이한 나라가 먼 나라가 아닌 우리와 휴전선을 맞대고 적대하는 동족이라는 점은 씁쓸하다. 극단적으로 폐쇄적이고 개발도 안 돼 우화적 상상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이상한 나라. 그런 나라와 대화도 하고 통일도 도모해야 하는 우리 처지가 곤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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