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칼럼] 기본소득의 불편한 진실

권혁세 단국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前금융감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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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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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세 칼럼] 기본소득의 불편한 진실
권혁세 단국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前금융감독원장
코로나19라는 초유의 경제 위기에 대응해 역대 최대인 35조원 규모의 3차 추가 경정 예산안이 이달 초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1, 2차 추경 예산까지 합하면 올해 추경 예산만 59조2000억원에 달한다. 저성장으로 세수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번 대규모 추경으로 적자국채 발행 확대가 불가피해 금년 들어 불과 6개월 사이에 국가 채무가 111조 4000억원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과거 10년간 연평균 국가채무 증가액(36조9000억원)의 3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38.1%) 대비 5.6%P 증가한 43.7%로 국가 채무관리 부처인 기재부가 그 동안 마지노선으로 여겨왔던 40% 선을 훌쩍 넘어서게 되었다.

최근의 국가 채무 증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팔라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물론, 기재부가 금과옥조로 여겨 왔던 국가채무 비율 40%는 불변의 기준선은 아니다. 대부분의 OECD 선진국들이 저성장·저출산·고령화를 겪으면서도 복지 지출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국가채무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과정을 겪어왔기 때문에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국가 재정 건전성을 잘 관리해온 대표적인 국가로 평가 받아왔으나 근래 들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재원 조달 계획이 없는 복지 확대 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함에 따라 국가 재정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물론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복지 지출 확대는 불가피한 추세이고 플랫폼 경제를 필두로한 4차산업 확산과 각종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양극화와 구조적 실업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보수든 진보든 정치이념을 떠나 기본생활 보장이나 실업보험과 같은 복지 지출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추세다. 이는 이미 선거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하지만 복지 확대나 국가부채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우리 경제 여건을 감안한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추경 편성으로 국가 재정 상황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국민 고용보험제나 기본소득 도입과 같은 국가 재정건전성의 근본 틀을 흔드는 메가톤급 이슈가 재원 조달 가능성에 대한 검토 없이 흘러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기본소득제도는 코로나19 긴급 재난 지원금과 달리 일회성이 아닌 매월 지급되는 소득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매달 30만원씩 지급하더라도 매년 18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국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나 재정·세수 여건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런 이유로 현재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도 핀란드, 네덜란드 같이 인구가 적고 소득 수준이 높은 극소수 국가에 불과하다. 기본 소득제와 달리 고용보험제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취약계층의 실업 증대를 계기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 여당도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고용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보험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고용보험 대상 확대도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만큼 재정건전성의 급격한 악화를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계적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과 같은 기축 통화국이 아니며 무역의존도나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건전한 재정이 방파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빠른 국가 부채 증가 속도가 계속될 경우 앞으로 재정이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국회와 정부는 입법으로 중장기 국가 재정건전성 목표와 재정수지 적자 한도를 설정하여 철저히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새로운 복지제도 도입 시 재정건전성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불요불급하거나 중복되는 기존 예산과 복지제도를 수술하고 저성장으로 줄어드는 세입 기반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 속담에 '앉을 자리 보고 멍석 깔라'는 말이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잘 살펴 형편에 맞게 일을 추진하라는 뜻이다. 복지 확대도 우리 재정 형편에 맞게 시급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뜻이다. 우리나라보다 복지 수준이 높은 유럽의 선진국들은 대부분 복지 확대 과정에서 증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왔다. 우리나라 정치권도 전국민 복지 확대라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달콤한 공약만 제시하지 말고 '증세 없는 복지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공론화를 통해 국민에게 알릴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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