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카지노王`의 죽음, 한 시대의 종언](http://contents.dt.co.kr/images/202006/2020061102152369061001[1].jpg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카지노王`의 죽음, 한 시대의 종언")
호는 1921년 홍콩에서 13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홍콩의 대부호 명가(名家)였다. 그의 증조부는 네덜란드계 유대인이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식민지가 된 홍콩에 흘러들어온 청년이었다. 증조부는 현지 여인과 결혼해 이 작은 섬에 정착했다. 자녀들은 영국상사의 매판(買辦)을 맡아 부를 축적했다. 그 중 가장 뛰어났던 아들이 로버트 호 퉁이다. 호의 큰 할아버지가 되는 그는 이화양행((怡和洋行·자딘 매티슨)의 총매판(總買辦)이었다. 그는 영국 식민행정을 뒷받침하면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림자 총독'으로 불렸던 그는 '호 왕조'의 초대 황제였다.
이런 집안 덕분에 호는 유년 시절을 부유하게 보냈다. 하지만 13살때 비극이 닥쳤다. 아버지가 주식투기에 실패해 전 재산을 날려먹고 증발해버린 것이다. 절망한 두 형이 자살했고 집안이 급격히 몰락했다. 일족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 대학 갈 형편이 못됐으나 가까스로 장학금을 받아 홍콩대 이학부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무역을 배우며 일본어도 공부했다. 재학 중 홍콩이 일본군에게 점령당하자 일가는 포르투갈령 마카오로 이주했다. 포르투갈이 2차대전에서 중립을 선언했기 때문에 당시 마카오는 중립항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무역이 용이했다.
마카오에서는 그는 일본군과 관련된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어느날 회사 배가 해적의 습격을 받았다. 당시 그 배에 타고있었던 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배를 지켜냈다. 사장으로부터 절대적 신뢰를 얻게된 사건이었다. 회사 중역으로 승진해 식량 등 일본군의 군수물자 조달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사치품과 기호품 밀수도 했다. 실적이 쑥쑥 좋아지자 사장은 당시로는 거액인 100만달러를 보너스로 줬다. 이 돈으로 1943년 자신의 회사를 차리게 된다.
연료유 전매, 폐유 정제 등으로 상당한 재산을 쌓은 그는 2차대전이 끝나자 홍콩으로 돌아가 부동산 사업을 벌여 또 성공을 거뒀다. 운은 계속 따라줬다. 호는 친구, 매제 등과 손잡고 마카오 카지노 독점운영권에 도전했다. 1962년 호는 2001년까지 독점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그는 피를 말리는 사투 끝에 흑사회(黑社會)를 제압해 도박장에 깃들인 폭력조직의 어두운 그림자를 일소했다. 이는 마카오 식민지 정부 뿐 아니라 중국 정부의 암묵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흑사회를 제압하자 그의 경영수완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카오는 세계최대 도박 도시로 변모했다. 2018년 그는 SJM홀딩스 회장직을 내려놓고 은퇴했다.
그는 염복가(艶福家)로도 유명했다. 억만장자인데다 유럽인의 피가 섞여있어 큰 키에 조각 같은 외모를 가져 인기가 많았다. 그는 4명의 부인에게서 최소한 17명의 자녀를 두었다. 첫번째 아내는 변호사였던 리완화(클라멘타인 레이타오)였다. 포르투갈계 혼혈로 굉장한 미인었다. 1942년 결혼해 사이에 1남 3녀를 두었다. 리완화는 1973년 포르투갈 여행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2004년 숨질 때까지 재활치료를 받았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카지노王`의 죽음, 한 시대의 종언](http://contents.dt.co.kr/images/202006/2020061102152369061001[2].jpg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카지노王`의 죽음, 한 시대의 종언")
두 번째 아내는 란징잉(루시나 램)으로 1957년 결혼했다. 중일전쟁에 참천했던 중국 군인의 딸이었다. 홍콩은 현재 일부다처제가 금지돼 있지만 1971년 10월 새 혼인조례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중혼이 허용됐기 때문에 합법적인 결혼이었다. 세 번째 아내 천완전(이나 챈)은 교통사고를 당한 첫 번째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고용된 간호사였다. 네 번째 아내는 광저우(廣州)에서 댄서로 일하던 량안치(안젤라 렁)다. 1988년 댄스 애호가인 스탠리 호와 파티에서 만나 연인이 됐다.
사람의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때로는 그 죽음이 한 시대의 종언을 암시하기도 한다. 전후 홍콩과 마카오 경제를 이끌어 온 사업가 1세대인 그의 죽음도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지금 홍콩은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고, 마카오의 미래 역시 불안감이 깔려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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