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칼럼] 시민운동, 결코 성역화 돼선 안된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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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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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함 칼럼] 시민운동, 결코 성역화 돼선 안된다
양승함 前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전 이사장 윤미향 의원은 마치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한 요식행위인 것처럼 대단히 사무적인 어투로 지난 금요일 기자회견을 끝냈다. 그가 흘렸던 진땀만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나타내 줄 뿐이다. 그 땀에 비해 그가 밝힌 진실의 양은 아주 미미했다. 아니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의연 사태는 개인의 실수나 잘못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성역화된 시민운동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 준다. 정의연은 일제의 비인도적 만행에 의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 아픈 상처를 치유할 목적으로 시민운동을 전개했기에 국민적 지지를 한껏 받아 왔다. 민족적 정의 구현에 앞장서는 이들에게 국민적 찬사와 성금이 쏟아졌다. 한일관계의 악화를 무릅쓰고서라도 아베 정권의 불성실과 오만을 규탄하고 정의연의 '정의'를 칭송했다.

그런데 정의연 운영은 부실투성이다 못해 부패의 온상이 된 것이다.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국민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다. 민족 정의 구현의 탈을 쓰고 사욕을 챙긴 파렴치한이다.

대체로 시민운동을 한다고 하면 일반 사람들이 소홀히 할 수 있는 사회 쟁점에 대해서 정의의 깃발을 들기 때문에 존중과 격려를 보내기 마련이다. 시민운동이 시민의 의지를 정부, 기업, 그리고 전체 사회에 정당하게 표출할 때에 국민적 찬양을 받는다. 문제는 이들이 성역화되면서 부패하기 쉽고 권력화될 때 위선적으로 변하며 궁극적으로는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정의연은 민족 정의라는 성역을 넘어 권력화의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윤미향 의원은 이미 권력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선배 사회운동가의 대열에 합류하려다 그만 좌초되고 말았다. 많은 정치 선배들이 특유의 연대 의식을 발휘해 친일음모론으로 물타기 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날조였다. 조국 사태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다시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피해자들이 바로 국민이기에 함부로 통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시민운동의 권력화 수준은 이미 우려 단계를 넘었다. 정치권력의 핵인 청와대에 그리고 국민 살림살이의 핵인 서울 시청에 시민운동가들이 몰려 있다. 또 이들 다수가 4·15 총선에서 여당 위성정당에 모여 집단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들이 연대하여 사회 기본질서를 바꿔보려고 하는 기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개혁은 당연히 시대적 과제이다. 그러나 친일파 '파묘론' 등 사소한 역사적 과오를 들춰내 국가 어른을 능멸하려는 의도들은 너무 불순하다. 이미 수 세대가 지난 후에 평지풍파를 만들려는 이들의 저의는 무엇인가. 질병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당면한 국가 과제가 산적한데 이를 숨기려고 또 다른 분란을 조장하려는 것은 아닌가. 현실과 미래에 다가올 시대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 국민통합과 협치의 시대정신을 발휘해야 하는데 해묵은 시대착오적 분쟁을 하필 왜 이 시점에서 야기하는가.

국민은 시민운동가들을 대표로 뽑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들이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동안의 시민운동에 대한 순수성은 의심받게 된다. 자신들이 권력을 지향하는 순간 자신이 벌이고 있는 사회운동의 정당성은 상실되기 일쑤다. 마음이 잿밥에 있는데 그 시민운동이 도덕성을 제대로 갖출 리 없다.

시민운동은 민주사회를 이루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매개물일 뿐이다. 시민운동은 당연히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적이어야 하며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이렇게 순수한 시민운동 전문가들이 많은 사회야말로 진정한 선진 사회다. 결코 시민운동은 성역화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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