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DT현장] 증권사가 부도날 뻔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006/2020060202102269065001[1].jpg "[DT현장] 증권사가 부도날 뻔했다")
발단은 증권사의 외화유동성 위기였다. 증권사는 파생결합증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해외 주가지수에 투자하는데, 주가 급락으로 추가 증거금을 물어야 했다. 달러가 급한 증권사는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팔았고, 그 영향으로 단기자금 조달금리가 뛰었다. 급기야 몇몇 증권사는 추가 증거금을 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평소 하루짜리 FX스왑 거래를 주로 하던 증권사가 갑자기 수 십억달러를 조달하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금융당국의 면밀한 증권사 유동성 관리와 외환당국의 선물환포지션 한도 확대, 한미 통화스왑 등이 없었다면 일부 증권사는 실제로 달러화 부도에 직면했을 것으로 당국은 평가하고 있다. 제조업체에서는 상거래 채무를 갚지 못하는 부도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금융회사의 부도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 SK증권이 JP모간과의 파생상품거래로 인해 파산할 뻔 했지만 총수익스왑(TRS)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금융상품에 잘못 투자했던 탓이 컸다. 외환위기 당시 공적자금을 투입한 옛 한일은행이나 조흥은행, 외환은행 등은 거래기업의 부실로 은행의 건전성이 훼손된 사례다.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신용 리스크 문제였다.
외환위기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생한 증권사의 외화 부도 위기는 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다. 만약 지난 3월 A라는 증권사가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해보면 된다. 선물거래 당사자가 증거금을 내지 못하면 선물거래소는 반대매매를 통해 해당 거래를 청산한다. A 증권사는 향후 국제거래에서 배제되고, 파생결합증권 추가 발행과 운용에 제약을 받게 된다. 기존에 발행된 파생결합증권은 만기도래 시점에 상환하면 된다.
그런데 파생결합증권은 발행 증권사의 신용에 기반한 신용연계채권이다. 부도난 증권사가 발행한 채권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는 없다. A 증권사 파생결합증권에 대한 중도환매 요청이 쇄도한다. 이렇게 되면 만기도래 전이라도 A 증권사는 상환압박에 내몰린다. A 증권사에 대한 불신은 국내 증권사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진다. 증권사 전체 파생결합증권에 대한 중도환매가 쏟아지면 100조원의 파생결합증권은 그야말로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잔액은 수 조원에 이른다. 자기자본의 수 배에 이르는 곳도 다수다. 파생결합증권의 중도환매가 발생하면 국내 증권사의 자기자본을 모두 동원해도 갚을 수 없다. 한 증권사의 일시적인 외화 부도가 증권사 전체의 연쇄 부도로 이어지는 시스템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국내 금융권에서 시스템 리스크는 주로 은행 중심으로만 논의돼 왔다. 바젤Ⅲ의 시스템적 중요은행(SIFI)이라든지 자본적정성 규제, 레버리지규제, 외화유동성 규제 등은 모두 은행 부문에 집중돼 있다. 증권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주식 중개만을 떠올린다. 주식 중개는 부동산 중개처럼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을 중개하는 역할에 불과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거의 없다. '동학 개미'라는 표현으로 인해 가려졌지만, 키움증권을 제외한 국내 증권사의 주요 역할은 주식 브로커리지보다는 리스크를 평가하고 떠안고 판매하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고수익·고위험 자산 선호가 늘어났고, 주요 증권사는 ELS, 파생연계증권(DLS) 등 파생결합증권을 대량 공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것처럼 증권사를 투자중개업자로만 생각하면 시스템 리스크를 방치할 수 있다. 100조원이 넘는 파생결합증권이 외환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고, 단기자금 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던 것처럼, 증권사가 빠지면 단기자금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증권사의 부도는 건설회사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실패로 이어진다. 증권사의 위기가 실물경제의 위기로 전이되는 모양새다. 또다른 파국을 막으려면 증권사의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김현동기자 citize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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