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코로나19와 미·중 무역전쟁 등 '복합위기'에 또 한번 조 단위 투자를 단행하는 결단을 내렸다. 수차례 강조했던 "어려운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된다"는 본인의 말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특히 이 부회장이 최근 집중하고 있는 반도체는 선대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때부터 시작해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까지 '뚝심'으로 키워 오늘날 우리나라의 수출을 20%까지 책임지고 있는 국가 핵심 사업이다. 재계에서는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격화, 여기에 이 부회장 본인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투자에 대한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일 삼성전자가 내놓은 평택캠퍼스 낸드플래시 생산라인 증설 투자 발표는 지난달 21일 이 곳에 극자외선(EUV) 전용 파운드리 라인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지 열흘 만에 나온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투자로 삼성전자는 열흘 동안 최소 18조원에서 2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재계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 등으로 기업들이 투자지갑을 닫는 와중에 이 같은 엄청난 규모의 결정을 하는 것은 총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감한 결단과 책임감을 가지지 않는 한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재계는 특히 이번 투자가 평택 캠퍼스에 집중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평택캠퍼스는 2015년 단지 조성공사를 위한 첫 삽을 뜬 지 5년 만에 '허허벌판'에서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를 망라하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첨단 반도체 복합 생산기지'로 거듭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당시 1개 라인에 약 3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가는 평택 투자를 두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용단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2017년과 2018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기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실제로 2016년까지 20조원대 중·후반이었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2017년 53조원, 2018년 58조원을 각각 돌파했고, 분기 평균 영업이익 10조원 돌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증권업계에서는 지난해 조정기를 거친 메모리반도체 시장이 올해 이후 다시 회복하면서, 삼성전자가 오는 2022년에 연간 영업이익 50조원대를 다시 돌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이렇게 클 수 있었던 배경에는 3대에 걸친 총수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1983년 2월 8일 이병철 선대 회장이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의 세계적 선진화 추세에서 우리나라가 더 이상 뒤떨어질 수 없다"는 이른바 도쿄 선언을 하면서 공식 시작했고, 이건희 회장 역시 1974년 12월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하는 등 반도체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줬다. 이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괄목할 성장세를 이어갔고, 1992년 D램, 2002년 낸드플래시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뒤 지금까지 업계 리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들어 현장경영 행보에 한층 속도를 붙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를 늦추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6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다짐했고, 같은 달 21일 평택 EUV 파운드리 투자 결정 당시에는 "어려운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또 코로나19 부담에도 지난달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 전격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는 등 책임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중국 업체의 도전, 일본 수출규제 이슈, 잇단 검찰 소환 조사 등 대내·외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지는 양상"이라며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부회장이 미래를 위한 투자에 오히려 가속도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투자 결정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8일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