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돈 많아도 기업 도산위기… 0.1% 수익 쫓아 `메뚜기 투기`

부동자금 사상 첫 1100兆 돌파
저성장 장기화·금융불안 겹쳐
마땅한 투자처 찾지못해 방황
대기자금 증시·부동산에 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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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린 돈 많아도 기업 도산위기… 0.1% 수익 쫓아 `메뚜기 투기`

[디지털타임스 차현정 기자] 초저금리로 시중에 풀린 돈이 갈 곳을 잃었다. 시중 부동자금이 사상 처음 11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에 돈이 대거 공급됐지만 풀린 돈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은 탓이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실물경제에 스미지 못하고 금융권에 맴도는 '돈맥경화'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시중 자금은 차서 넘치는 데 정작 기업은 돈이 없어 부도가 나는 사태가 발생할 공산이 커진다. 대규모 자금이 단 0.1%의 수익이라도 쫓아 메뚜기떼처럼 단기적으로 이리 저리 떠도는 '수익 노마드'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나마 'K바이오' 등 코로나 수혜주들이 경영 실적에서 선방을 하면서 일단 단기성 자금의 관심이 증시에 쏠린 상황이다. 하지만 대규모 단기성 자금은 언제든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주택가격 급등 등 경기에 악영향을 주는 투기적 성격으로 변신할 공산이 커 금융당국의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건 그만큼 경제활력이 떨어져서다. 경기침체의 전형적 현상인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금고 밖은 위험해" 돌지 않고 쌓여가는 돈= 31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단기 부동자금은 1106조3380억원으로 지난해 말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의미하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부동자금의 규모는 지난 3월 말 현재 1106조338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104조5506억원)보다 6조832억원 증가했다.

단기 부동자금은 현금을 비롯해 금융사에 맡겨진 만기 1년 미만의 자금을 합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이 포함된다.

2012년 말 660조원대에 불과했던 단기 부동자금은 2014년 800조원에 육박했고 지난해 말 1000조원을 돌파하며 5년 사이에 200조원 이상 늘었다.

최근 들어서는 금리가 떨어져도 돈이 더 몰리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린 이후 증가 속도는 빨라졌다. 월별 증가폭을 살펴보면 지난해 11월(32조7000억원 증가)과 12월(34조8000억원 증가) 30조원대에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한 올해 2월에는 47조원으로 커졌다. 한 달 증가폭이 40조원을 넘은 것은 통계 집계 이래 최초다.

풍부해진 유동성이 증시나 부동산으로 쏠릴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28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0.75%→0.5%)로 유동성이 더 풍부해지자 시중 자금이 증시나 부동산으로 흐를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가 떨어질수록 부동자금은 자산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며 "규제가 강해진 부동산 시장보다는 한동안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흘러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진단했다.

◇묶인 대기자금 증시·부동산 쏠림 가속화 = 실제 최근 코스피가 2000선 고지를 되찾으면서 증시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돈인 투자자예탁금은 이달 28일 현재 44조5794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인 지난해 말(27조3384억원)보다 63.1%나 급증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빚을 내 주식을 사들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이달 18일(10조783억원)에 3월 이후 두 달여 만에 10조원대로 올라섰다. 통상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는 개인 투자자가 많아지면 신용융자 잔고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에는 홍콩 국가보안법이 촉발한 미국과 중국 간 대립의 영향으로 금융시장도 난기류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홍콩에 부여한 특별지위를 철폐하는 절차를 시작한다고 밝히면서 시장의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이 국가 간 갈등으로 확산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에 추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립이 격화될수록 국내 증시는 약세 흐름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쌓인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조현수 우리은행 양재남금융센터 PB팀장은 "저금리 시대 부동산 투자가 대안일 수 있지만, 현재 부동산은 하락 사이클에 있다고 본다"며 "무엇보다 너무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데다, 코로나 사태로 실물경기가 더 나빠지면 실업·소득 감소와 함께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향후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 소식과 함께 경기와 물가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 부동산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문제는 단기 부동자금이 언제라도 금융과 경제 불안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유동성이 증시나 부동산 등에 한꺼번에 쏠릴 경우 자산거품을 양산하며 경제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제에 외부 충격이 찾아 올 때마다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자금은 금융시장 변동성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현정기자 hjcha@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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