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美의 굴욕·中의 망상, 패권국은 없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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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美의 굴욕·中의 망상, 패권국은 없다
박영서 논설위원
"중국에 매우 실망하고 있다. 관계를 통째로 단절하는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50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각) 폭스 비지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외신들은 단교 가능성까지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어찌보면 선전포고에 가까운 발언이다. 예삿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對)중국 강경 발언과 조치들은 계속 쏟아지고 있다.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당장은 대화하고 싶지 않다"면서 중국을 또 압박했다. 동시에 화웨이(華爲) 등 중국 통신장비업체의 미국내 영업을 사실상 금지하는 행정명령도 1년 연장했다.

올해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악재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코로나 국제공조보다는 중국을 정면 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를 바이러스와 싸우는 '전시(戰時)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현대 미국 역사상 큰 전쟁을 치르는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코로나19 종식 선언과 거리가 먼 상황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어떤 형태로든 중국의 목을 치지 않으면 자신의 목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은 잘 알고있다. 피를 보지는 않더라도 대중 제재 형태로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을 중국에 지우게 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이런 트럼프의 대중 강경책에 굴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중국은 '마스크 외교' 등으로 국제적 영향력 확대에 힘을 쏟으면서 코로나19 이후를 겨냥한 패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의도와는 달리 '마스크 외교'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 우한(武漢)에서 처음으로 보고됐다는 사실은 애써 감추면서 자기 과시적 선전에만 열을 올리는 중국의 모습은 많은 나라들의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안티 중국' 정서감이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중 양국은 올해 1월 1단계 무역협정에 서명하며 서로 악수를 나눴다. 하지만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로 관계는 돌변했다. 세계 1, 2위 경제대국의 갈등이 다시 극한으로 치닫으면서 결별에 가속도가 붙고있다. 이에따라 앞으로 국제질서의 틀이 크게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중 모두 승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서 우위에 서는 국가는 바이러스로부터 세계를 구했다고 인식된 국가일 것이다. 죽음과 직면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누가 우리를 구해줄 것인가'라는 것을 절실하게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구제자'로 인정받은 국가는 세력이 더욱 커질 것이고, 신뢰를 잃은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저하될 수 밖에 없음은 분명하다.

중세 시대 카톨릭 교회의 사례를 보면 그렇다. 교회는 흑사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지 못했다. 흑사병 이후 교회의 권위는 추락했고 이는 근대국가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현대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마셜 플랜을 통한 경제원조를 통해 유럽을 살리면서 패권국가가 됐다. 이제는 코로나19 사태가 국제사회의 역학구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G2'라고 불리는 미중 어느 쪽도 세계의 리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유엔과 유럽연합(EU)은 존재감이 희박해졌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2차 대전 직후라기 보다는 2차 대전 직전과 비슷하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에서 승자가 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미국도 중국도 모두 패자(敗者)의 운명이다. 미국은 외교력을 잃고, 중국은 신뢰를 잃을 것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에 관심이 없고, 중국은 국제사회를 이끌 능력이 없다.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 무극화(無極化)된 세계에서 살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예측 불가능한 무질서한 세계다. 무엇보다 최대 피해자는 민주주의 체제가 될 것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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