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줬다 뺏기` 이제 그만!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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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줬다 뺏기` 이제 그만!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지난 몇년간 정권을 대물림하면서 해결하지 못한 골칫거리가 있었다. 소위 '줬다 뺏는' 기초연금 개정 문제다. 소득 하위 70%에 속하는 모든 노인에게 월 최대 30만원까지 지급하는 것이 기초연금의 주요 골자인데, 소위 '보충성의 원리' 때문에 기초연금을 받을 경우 그 다음달 생계급여에서 전액 삭감되는 것이 문제였다.

작년 말 올해 예산안 처리 당시에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당시 빈곤노인기초연금보장연대는 "이명박 정부는 10만원 줬다가 10만원 뺏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20만원 줬다가 20만원 뺏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30만원 줬다가 30만원 뺏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비난 여론에도 정부여당이 이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재정부담 때문이었다. 당시 65세 이상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들에게 월 생계비 10만원을 추가 지원할 경우 연 평균 5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도 나왔다.

정부는 이번에 또 줬다 뺏기를 '자발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이번 대상은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한 코로나19 사태 긴급재난지원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넓히면서 자발적 기부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며 "형편이 되는 만큼, 뜻이 있는 만큼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고위 공직자들은 물론 여당도 동참하면서 기업 동참까지 독려할 기세다. 여당 일각에서는 삼성 등을 지목하며 대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재난지원금에 추가 기부금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는 일부 언론보도도 있었다.

재난지원금의 애초 목적은 취약계층 구휼이었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재난지원금 지급대상 안은 처음엔 소득 하위 50%였는데, 이후 70%, 그 다음에는 전 국민으로 확대됐다. 이는 사실상 정치권이 지른 불이다. 지난 총선 당시 여당 주요 핵심 인사들이 선거유세 현장에서 "전 국민에게 1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여기에 당시 야당 대표까지 '전국민 1인당 50만원' 지급 공약을 내놓으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는 정부여당 내부에서의 엇박자로 이어졌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며 '70%'로 낮춰달라 했지만, 여당은 물론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압박하면서 결국 100% 지급이 확정됐다.

그런데 이제와서 정부여당은 다시 관제기부로 재원을 회수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홍 부총리는 얼마 전 국회에서 "당연히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소득 상위 30%에 포함되는 분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상당 부분 기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결국 또 편가르기다. 재계와 대기업 근로자들이 기부를 하면 '의식 있는 시민'이 되고, 안 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부담을 받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대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슬쩍 유도해 구멍난 예산을 메우겠다는 의도까지 보인다. 현 정부 들어 지속해서 이어지는 반기업 정서 속에서 압도적인 승리까지 따낸 정부여당의 압력을 버텨낼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벌써 일부 기업은 동참의 뜻을 내놓기도 했다. 어차피 전 국민이 대상이면 재난지원금의 목적은 이제 취약계층 지원이 아니라 소비진작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역 재래시장이나 영세 상공인들에게 그 돈이 가도록 하는 것이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정책취지와도 맞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워담을 수 없다. 그렇다면 낼 돈은 확실히 내고 그 다음에 다시 제도를 재정비하고, 정부 내 새는 돈을 단속해 곳간을 채우는 것이 낫다. 현 상황은 사고는 정부가 치고, 수습은 가만히 있던 민간인들에게 하라는 것 아닌가 심히 걱정된다. 재계 총수나 대기업 근로자도 엄연히 세금을 내는 국민이지, 공직자가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강요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 의식에서 비롯한다. 도덕적 의무는 단순히 법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 뿐 아니라,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정도를 지키는 자세에서 비롯한다. 줬다 뺏기는 이제 그만하자. 애시당초 재난지원금의 효과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여전하지만, 기왕 하기로 했다면 소득과 소비 양 측면에서 소상공인이나 영세 시민을 돕는 효과를 극대화 하는 것이 더 낫다.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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