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재계 순위에서 현대중공업, CJ가 자존심을 세웠고, 한진, 에쓰오일 등이 체면을 구겼다. 지난 1년 간 대부분 기업집단에서 동일인(실질적 지배자)에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지난해 실적과 계열사 현황 등을 바탕으로 내놓은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의 64개 기업집단(소속회사 2284개) 순위를 보면, 1~8위까지 재계 순위는 변화가 없었지만, 9위부터 50위까지는 작년과 같은 순위를 유지한 곳이 단 6개에 불과할 만큼 치열한 순위 변화가 이뤄졌다.
먼저 현대중공업이 농협을 제치고 10위에서 9위로 한 계단 올라갔다. 계열사 수는 1개 줄었지만 자산총액(공정자산)은 7조9000억원 가량 늘어났다.
정몽준 최대주주가 동일인으로 지정돼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업황 부진으로 고전하다 2018년부터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로봇과 산업용 기계, 석유화학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권오갑 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고, 지난해부터 대우조선해양과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합병이 성사되면 과거 3강 체제였던 조선업의 구도는 1강 1중으로 재편되면서 글로벌 경쟁력도 높아지지만, 일본 등의 반대와 코로나19에 따른 업황 부진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사업 확대를 추진 중인 CJ도 14위에서 13위로 한 계단 올라갔다. 계열사 수는 75개에서 77개로 늘었고, 자산총액도 2조3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지난해까지 식품과 물류 등에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행보를 이어갔던 이재현 회장의 CJ그룹은 작년 하반기부터 재무구조 개선 등 안정화 작업에 돌입했다. CJ헬로비전과 투썸플레이스를 매각하는 등 사업재편에 나서면서 숨 고르기를 마친 뒤 다시 재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이 동일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LS그룹도 17위에서 16위로 한 계단 올랐고, 박삼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8위에서 20위로 무려 8계단이나 상승했다. 다만 금호아시아나의 경우 재무구조 악화로 주력인 아시아나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라, 이 작업이 끝나면 순위가 급격하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농협과 한진, 부영, 에쓰오일 등의 순위는 떨어졌다. 농협의 경우 계열사 수가 14개나 늘었지만 자산총액은 단 1조4000억원만 증가해 현대중공업에 밀렸다.
'남매의 난'으로 경영권 분쟁 중인 한진의 경우 계열사 수가 1개 줄었고, 자산총액은 1조9000억원 가량 늘었다. 한진그룹은 최근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을 살리기 위한 자구안을 내놓을 계획이고, 고(故) 조양호 회장 별세 이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경영권 분쟁 등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회사 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은 20위권 밖(20→21위)으로 밀려났다. 계열사 수(3개)나 자산총액(4000억원↑)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올 1분기 1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시황악화의 직격탄을 맞아 내년에 추가 하락 가능성도 보인다. 20위권을 턱 밑에 뒀던 현대백화점그룹도 한 계단 밑(21→22위)으로 내려갔다.
한편 1~8위는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포스코, 한화, GS 등이 굳게 지켰다. 삼성의 경우 계열사 수는 줄었지만 삼성전자의 견고한 실적 등을 앞세워 압도적인 1위를 유지했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현대차는 친환경·모빌리티 경쟁력을 강화하며 자산총액을 11조2000억원이나 늘렸다.
상대적으로 반도체 호황에 최태원 회장의 공격적인 M&A로 성장을 이어갔던 SK의 경우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고, LG와 롯데는 지난해 계열사를 일부 정리하는 선택과 집중으로 내실과 미래성장동력을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