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표류하는 보수와 진보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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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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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표류하는 보수와 진보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4·15 총선이 끝나고 승패의 원인과 향후 정국에 대한 각 정당과 논객들의 토론이 줄을 잇는다. 토론이 활발하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생각과 선호 등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토론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계기로 새삼 떠오르는 것은 한국의 보수와 진보의 실체에 관한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각 정당은 물론 유권자들이 정작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선거에 임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흔히 인간 이성은 불완전하며, 인류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형성된 도덕, 관습, 전통, 법 등에 바탕을 둔 사회 질서가 인간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잘 보호한다는 이념으로 인식된다. 보수주의의 태두로 에드먼드 버크가 꼽힌다. 그는 영국의 명예혁명을 높이 평가한 반면 미국 식민지 정책과 동인도회사의 인도 지배를 비판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은 급진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내적 모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지했다. 그래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스스로 지향하는 가치나 이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철학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다. 즉 보수주의는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이념에 따라 언제든지 지향점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보수주의가 정부 개입주의와 동행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수구를 지향할 수도 있다.

한국의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이유는 사회철학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가 하나의 이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정치적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는 자유주의의 가치와 이념을 지향한다는 기치를 분명하게 내걸고, 자유주의적 보수가 어떻게 개인의 삶의 풍요와 사회 평화는 물론 인류 문명의 진보를 이룩하는지를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한국의 보수는 사회 철학적 닻이 없이 떠도는 부초(浮草)였다.

그렇다면 진보는 어떠한가? 우선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은 인간 세상이 실제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은 의당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당위를 앞세운다. 그들은 무결점 사회를 원하지만 그런 것은 인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이들의 사고 체계는 원시 공산사회에 갇혀 있다. 인간이 사유재산 제도와 기술 발전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인간답게 산 것은 수렵·채취 시대와 비교하면 매우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이는 인간의 사고 체계가 수렵·채취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도 가부장의 주도 아래 수렵·채취하여 균등하게 나누는 원시 공산사회의 사고 체계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런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려면 현대 사회의 형성과 운행 원리를 생각과 관찰과 토론을 통해 이해해야 하지만, 진보주의자들은 그런 지적 작업에 나태하다. 그래서 그들은 이기적 인간들이 살아가는 대규모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규모의 원시 공산 사회를 그리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복잡한 사회 질서와 운행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 부담을 지지 않는다. 진보주의자들은 이런 틈새를 파고들어 대중의 원시 감정을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문명의 퇴보를 획책한다. 그래서 진보는 퇴보를 기막히게 위장한 기만이다. 사회 철학적 닻을 들먹이는 자체가 진보에는 과분한 대접이다.

지금 중요한 문제는 어느 당이 총선에서 몇 석을 얻었느냐는 것보다 정당이나 유권자들이 무엇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알고 선거에 임했느냐는 것이다. 그로부터 선거와 한국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국가 대계를 위한 의미있는 행사가 되려면 보수와 진보를 내세우는 정당이나 이를 판별하는 유권자가 모두 상당한 지적 수준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는 결국 '내 떡이냐 네 떡이냐'를 놓고 다투는 게임이 된다. 민주정의 타락과 국가의 몰락을 막기 위해서는 단순히 표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던지는 똑똑한 유권자들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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