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원 안내따라 일사불란 투표
연합뉴스
21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거가 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다만 외견상 분위기와는 달리, 각 정당 투표에 대한 유권자들의 소신만큼은 분명해보였다.
총선 당일인 15일 오전 9시 30분.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맞붙는 곳인 서울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듯 마스크를 낀 채 투표소에 도착한 유권자들은 투표 사무원의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움직였다. 이들은 투표 사무원이 뿌려준 손 소독제를 바르고 체온계로 발열을 체크를 한 뒤 일회용 비닐장갑을 착용한 채 투표소로 입장했다. 이른 시간인 지라 중·장년층의 모습이 주로 눈에 띄었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드문드문 목격된 젊은 유권자들은 친구들끼리, 또는 부모와 함께였다. 투표소를 방문한 젊은 유권자들은 대부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운동복 등의 편안한 차림이었다.
교남동주민센터 투표소에서는 큰 혼잡은 빚어지지 않았다. 지정 투표소를 확인하려는 시민들로 인해 잠시 줄을 서기도 했지만 금세 질서를 되찾았다. 다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투표소를 잘못 찾아온 유권자는 있었다. 중·장년층으로 보이는 한 유권자는 투표소 앞에서 투표 사무원의 도움을 받아 본인의 투표소가 아님을 확인하고는 황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위치한 경희궁자이2단지아파트 주민공동시설 내에 마련된 제3투표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포착됐다. 하얀 머리의 한 유권자는 "여기가 아니라고 한다"며 투표소 관계자에게 본인이 가야 할 투표소의 위치를 물어보기도 했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시각 방문한 제3투표소는 제법 줄이 길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지키기 위해 띄엄띄엄 줄을 서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 가족 단위의 유권자도 눈에 띄었다. 부모님과 함께 투표소를 방문한 한 아이는 늘어선 줄을 보고 "엄청 길다"며 놀라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도 있었다.
종로는 '정치 1번지'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상징성이 큰 곳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는 차기 대권주자급으로 거론되는 이 위원장과 황 대표가 출마하면서 미니 대선을 방불케 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후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과 달리 '디지털타임스'가 현장에서 만나 본 유권자들의 반응은 다소 불만스러웠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정치권의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투표를 행사하고 나와 인물이 아닌 '당 대 당'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정치권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A씨는 "사람을 보고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당 대 당 대결로 가고 있어 문제가 많다고 본다. 전부 당을 보고 찍지 인물을 보고 찍지는 않잖나"라고 꼬집었다. A씨는 이어 "국민이 원하는 대로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신뢰를 저버린지 오래됐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길 바란다. 그거 말고 더 있겠나"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유권자인 B씨도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힘든 상황인데 민생 안정과 관련된 정책에 힘을 쏟아주셨으면 한다"며 우회적으로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했다.
이날 투표소에서는 생애 첫 투표를 하게 된 유권자의 모습도 목격됐다. 부모님과 함께 투표소를 찾은 C군은 투표를 마치고 나와 "되게 신기했다.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고 설레는 첫 투표 소감을 전했다. 다만, 새내기 유권자에게도 정치는 바뀌어야 할 대상이었다. C군은 "사실 그동안은 투표를 하지 않았으니까 정치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면서도 "가끔 뉴스를 보면 (정치의) 좋지 않은 모습들이 많이 비춰졌던 것 같다. (이제는) 제대로 된 사람들이 뽑혀 국정을 잘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일침했다.
임재섭 기자 yjs@
고민정 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통합당 후보가 맞붙는 서울 광진을 지역도 투표로 자신의 소신을 표현하려는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모여들었다. 구의 1동 주민센터 1층 민원실에서는 투표를 기다리는 짧은 줄이 형성됐다. 선거사무원들이 "신분증을 미리 준비하라"고 말하는 등 빠른 투표 절차를 분주히 안내했지만, 유권자들이 계속 꼬리를 물면서 줄은 결국 사라지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중·장년층 유권자들은 장바구니나 지갑을 든 채 방문했고, 젊은 유권자들의 경우 반려견을 담은 케이지를 들고 투표소를 찾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따금씩 지정투표소를 묻는 질문에 선거사무원들이 "여기가 투표장소가 아니"라고 안내하면, 화를 내며 되돌아가는 유권자들도 있었다.
유권자들은 저마다 각각 지지하는 정당이나 성향은 달랐지만, '표로 심판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분노감 만큼은 공통적으로 드러냈다. 투표를 마친 김희주 (69)씨는 본지에 "이번엔 투표를 안 하면 나라가 큰일 난다는 마음으로 투표하러 나왔다"고 했다. 김 씨는 "이번에는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며 "왜, 노인들은 투표를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성범(33)씨는 "선택을 안 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하고 후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오 씨는 "투표를 하고 잘못됐다고 느끼면 촛불집회 같은 곳에 갈 수가 있는데, 그 전에 지지하고 옹호할 수 있는 기회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 투표는 일단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양효진(25)씨 역시 복잡한 심경이 묻어났다. 양 씨는 "투표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민 없이 나왔다"면서도 "민주당과 정의당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며칠 전에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임재섭·윤선영 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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