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일 만기… 금리 0.78% 적용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도 검토"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도 검토"
한국은행이 '한국판 양적완화' 첫날 금융권에 5조2500억 원을 풀었다. 한은은 이달부터 3개월 간 매주 화요일마다 정례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들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신용경색이 악화할 경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일 한은은 은행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RP 매입 입찰을 실시한 결과 5조2500억 원이 모두 응찰돼 전액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RP란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주고 되사는 채권이다.
사실상 채권을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빌리는 것이다. 이날 한은이 매입한 RP 만기는 91일로 금리는 기준금리(연 0.75%)보다 0.03%포인트 높은 연 0.78%로 결정됐다.
이번 한은의 무제한 유동성 공급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없던 조치다. 이 총재는 "회사채 만기도래 규모 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시장의 자체수요와 채안펀드 매입 등으로 차환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한국은행은 기본적으로는 은행 또는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시장안정을 지원하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 회사채시장 안정을 위해 한은법 제80조에 의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법에서 정한 한국은행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거나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은 안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지난달에도 한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되자 증권사 대상 RP 매입과 국고채 단순매입으로 총 5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시장 일각에선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한은이 RP 매입 모집금리 수준을 기준금리보다 낮게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한은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려고 시중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는데, 자칫 금융기관들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 다른 채권을 사들이는 등 금리차액거래에 몰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RP 매입금리를 기준금리보다 낮게 책정하면 금융기관의 금리차액거래 수단으로 전용돼 응찰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과다해질 우려가 있다"며 "2008년 채권시장안정펀드 지원시에도 모집금리의 최저 하단은 당시 기준금리였다"고 일축했다.
이날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을 활용한 첫 외화대출 자금 87억2000만 달러도 시중에 풀렸다. 지난달 31일 한은의 통화스와프 자금 공급을 위한 첫 외화대출 1차 입찰 공급한도액은 120억 달러였지만 응찰액은 87억2000만 달러에 그쳤다. 은행권은 "자산건전성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110%로 담보를 제공해야 하는 3개월짜리 대출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는 속내다.
한편 한은이 한은법을 이유로 회사채 등을 매입할 수 없다고 밝히자, 중앙은행의 역할이 소극적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이에 한은은 워싱턴 주재원 보고서를 통해 "이번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급대출제도 도입은 재무부 장관의 사전 승인과 손실보전을 위한 재무부의 재정지원을 수반했다"고 짚었다. 한은은 현행법상 유사한 모델을 적용하기 힘들지만 입법을 다루는 국회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여지도 있는 상태다.
심화영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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