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평균 프라이버시`가 `n번방` 키웠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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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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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평균 프라이버시`가 `n번방` 키웠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소라넷에 이어서 n번방 사건이 이슈가 되었다. 경찰은 가해자 조씨와 공범에게 적용되는 혐의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상 아동음란물제작, 강제추행죄, 협박, 강요, 사기, 개인정보보호법 상 불법 개인정보제공, 성폭력처벌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 혐의 등 모두 7개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사건은 이미 2019년 2월 부터 진행된 사건이며 2019년 11월에 언론에 보도되면서 공론화되어 처벌에 대한 요구가 증가했고 2020년 1월 15일에는 국회청원까지 시작되었다. 국회는 3월 5일 국회 청원 1호 법안인 'N번방 방지법'(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고 했으나 그 실제 내용은 딥페이크 기술(음란영상에 일반인의 얼굴을 삽입하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영상의 제작·유통의 처벌 규정만 포함되었을 뿐이다. 실제 국회 법사위 제1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에 대하여 논의된 내용을 보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시민들의 인식과 범죄상황 및 피해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현재의 법제도를 통하여 대상자를 처벌하고 향후 발생할 범죄를 억제할 강력한 단속 체계는 현재 입법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으로는 쉽지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입법자와 이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는 당자사들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무척 낮기 때문이다.

강력한 처벌 규정이 담긴 관련 법령이 개정되더라도 실제로 사건에 대한 최종 양형은 그리 높아질 것 같지 않다. 우리의 처벌 규정은 범죄에 대하여 평균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일부 법령에 가중 처벌에 대한 특례조항이 있지만 법원은 범죄의 경중을 가려 해당 범죄에 대한 양형 가이드라인에 따라 최고와 최저 사이의 적당한 그 어떤 곳에 선을 긋는다. 때로는 상황에 따라 법정에서 가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가중의 권리와 잣대는 검사가 기소하는 대상 범죄의 범위에 제한받고 이를 기반으로 판결하는 판사의 양형 범위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평균에 선긋기이다.

데이터와 범죄 사실에 근거하여 양형의 가중을 계산할 수 있는 공식을 제공하고 그 공식 마련에 합리적인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다면 법정에서 그어지는 공감할 수 없는 평균적인 잣대에 보완재가 될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어렵다면 배심원 제도 또는 국민참여재판을 통한 방법도 강구될 수 있다. 결국 성범죄는 기소하는 검사와 판결하는 판사가 한 달에 수백 건의 송사를 처리하면서 가지고 있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평균 잣대가 아니라, 성범죄로 인하여 발생하는 고통이 한 개인과 그 개인을 둘러싼 가정과 사회에 주는 영향을 정밀하게 평가한 후에 타당하고 적정한 형량이 정해지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특히 프라이버시의 경우에는 평균적인 잣대가 적용되기 어려운 분야이다. 한장의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태어나서 가장 크게 받는 압박이며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나을 정도의 상황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프라이버시를 이용한 범죄는 대상자에 따라서 피해의 인식정도가 천차만별이며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는 피해 영향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범죄자는 이 중에 협박이 잘 작동하는 대상만을 상대로 범죄행위를 계속해 나가기에 결국 피해자는 최악의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주민등록번호 한개가 노출되었다고 하여 별일 있겠는가 라는 말 한마디에 녹아있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왜 시민들이 굳이 비용을 들여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회에 현재의 디지털 생태계에 적용된 기존의 법제도가 어떤 한계에 도달한 것인지 논의하고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법제도의 운영에서도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그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겠다. 디지털 시대에 발생하는 성범죄를 1980년대 꼬방동네에서 '어둠의 자식들'에게 일어났던 사건의 기억과 정서를 가지고 마주한다면 답이 있을리 만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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