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룰렛이 된 비례의원선거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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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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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룰렛이 된 비례의원선거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4·15 총선의 공천마감이 오는 27일로 다가오면서 47석에 달하는 비례대표 후보 명단도 조금씩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후보명단에는 사장(死藏)되는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비례대표의 당초 취지는 없어지고 각 정당들의 밀실공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평가다. 특히 새롭게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점으로 위성정당들이 난립하면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더불어시민당을 창당, 결과적으로 앞서 만들어진 열린민주당과 함께 2개의 위성정당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을 앞뒤로 공평하게 나눴다. 더불어시민당은 더불어민주당이 기본소득당, 가자평화인권당, 가자환경당, 시대전환 등 4곳의 소수정당과의 급하게 만든 비례선거용 연합정당이다. 더불어시민당이 이들 정당과 어떠한 가치를 공유하는 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대신 비례후보들을 공천할 테니, '더불어'만 보고 투표해달라고 강조할 뿐이다.

벌써 참여 인사들에 대한 자격 논란이 생겨나고 있다. 가령, 권기재 '가자환경당' 대표의 미성년자 성추행 전력과 '가자!평화인권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역사관이 논란이다. 정봉주 전 의원과 손혜원 의원의 열린민주당에는 문재인 정부 지지층이 모여 있다는 평가다.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 공천후보로 지원했다. 하지만 최강욱 전 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아들 허위 인턴활동 확인서 발급으로 검찰에 기소되었고, 김의겸 전 대변인은 더불어민주당에 공천신청했다가 부적격 판정을 받았기에 적절한 후보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최근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과 공천명단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미래한국당은 지난 16일 조수진 전 동아일보 위원을 비례 1번으로, 김정현 변호사를 비례 5번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조 논설위원이 왜 1번인지, 변호사 경력 11개월의 김 변호사는 왜 5번인지에 대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미래통합당의 반발과 선거인단의 수정안 부결로 한선교 당 대표는 결국 하차했다. 한 대표는 20일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박형준 전 통합신당준비위원장, 박진 전 의원을 추천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반격했다"고 주장했다. 종로구 3선의원 출신의 박진 전 의원에 대한 공천 요구는 황 대표의 종로구 출마와 맞물려 공천거래라는 논란도 일어나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모리스 듀베르제(Maurice Duverger)가 말했듯, 소선거구제에서는 양대 거대 정당의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 두 거대 정당이 의회를 반복해 독점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렇기에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 이외의 목소리가 파묻히는 것을 막는 대안이 된다. 하지만 최근 위성정당의 난립은 소수의 목소리를 보호하자는 비례대표제의 당초 취지를 없앴다. 비례대표는 한때 직능대표로 부르면서 여성, 청년, 장애인 및 정치신인들의 등용문으로 작동해왔다. 지역 인지도가 낮지만 국회에 꼭 필요한 영입인사들을 배려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기능도 사라지고 있다. 단지 당 지도부의 인연과 감(感)에 의해 자기사람 심는 장치로 변질되었다는 평가다.

정의당과 국민의당의 비례후보 선정과정도 석연치 않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된 류호정 후보는 대리게임논란에 휩싸였고, 비례대표 6번의 신장식 변호사는 음주운전 1회·무면허운전 3회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 국민의당은 비례2번으로 이태규 의원, 3번에는 권은희 의원을 내세웠다. 20대 국회에서 이렇다 할 활동이 없던 두 의원의 전진배치는 마지막까지 안철수 당 대표의 곁을 떠나지 않은 것에 대한 배려로만 풀이된다.

인기 TV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이나 '코미디빅리그'에서는 종종 룰렛을 통해 각자 역할을 정한다. 커다란 원형판에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이를 돌려서 화살표가 멈춘 곳에 이름 적힌 사람이 벌칙을 받거나 보상을 받는다. 아슬아슬하게 벌칙에서 벗어나거나,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보상을 받으면 시청자들은 묘한 재미를 느낀다. 실력과 능력은 배제되고 오직 운으로만 결정된다. 공정과 투명, 공개의 원칙이 무너진 비례대표선정은 정치지도자를 룰렛으로 뽑는 것과 같다. 왜 이들을 뽑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후보자 이름들이 적힌 룰렛을 돌려야 하는 상황으로 국민들은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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