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칼럼] 추경, 규제·노동 개혁없인 실탄낭비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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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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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칼럼] 추경, 규제·노동 개혁없인 실탄낭비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11.7조원 규모의 추경을 놓고 세입경정 3. 2조원을 빼고 나면 8.5조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증액을 요구한 여당 대표는 신중한 입장의 부총리에게 해임을 건의할 수도 있다고 했다고 한다. 상공회의소 회장까지 나서서 추경 규모를 40조원늘리라고 하고, 일부 지자체 장들은 재난기본소득을 주장하기까지 한다.아무리 미증유의 사태라도 어디에 어떻게 쓰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따져보고, 비용보다 효과가 클 때만 나라 돈을 쓰는 기본은 지켜야 한다. 이런 재난이 다시는 안 오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다음 세대가 재난 시에 쓸 여력을 남겨주어야 한다. 금액을 먼저 정해놓고 무작정 많이 쓰자는 발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선진국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 마이너스까지 내리고 적자재정을 감수하고 돈을 푼 결과 작금의 경제위기에 대응할 수단이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을 보고도 배우는 것이 없다는 말인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부총리를 믿어 본다.

먼저 이번 추경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업종의 기업과 그 종사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주어진다면 좀 더 늘려도 된다. 이미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된 여행, 관광숙박업, 관광운송업, 공연업 이외에도 전시, 음식, 숙박, 학원, 병의원 등 피해가 큰 업종에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추경규모를 좀 늘려도 좋겠다. 그러나 아동수당 대상자 등에 대해 4개월간 월 10만원씩 40만원을 지역사랑상품권 또는 온누리상품권으로 피해 유무와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주어지는, 수요진작 효과로 밖에 정당화될 수 없는 현금 살포성 지출은 절박성과 효과성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 이렇게 살포되는 구매력이 피해집중 업종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은 코로나 사태가 진전되기 전까지는 극히 희박하다. 상품권을 피해집중업종에만 쓸 수 있는 것으로 바꾸면 좋겠다. 이번 추경에 저소득층, 재래시장 지원을 끼워 넣으려고 하니까 총선용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이런 현금 살포성 지출은 좌우지간 수요만 창출하면 된다는 '소득주도성장정책'과 사고방식이 너무 닮았다. 최저임금을 크게 올려서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층이 쓸 돈을 늘려 수요가 증가하면, 장사가 잘 되고 투자가 늘고, 고용이 늘고, 다시 소비가 느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발상이 그대로 여기에도 깔려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최저임금을 올려줘야 하는 영세자영업자들도 소비성향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간과했고, 이들 중 일부가 폐업을 하고 거기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어서 초래될 소비감소를 예측하지 못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재정지출은 미래 세대의 주머니를 털어서 현 세대가 쓰자는 것이니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수요 진작 효과는 분명 더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규제혁파와 노동개혁이 없이는 수요진작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돼있다. 규제·노동 개혁 없는 수요진작은 어떤 것이라도 실탄낭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세금 감면도 잘 설계해야 한다. 피해가 극심한 업종들은 올해 적자가 나서 세금을 낼 일도 없을 터이므로 세금 감면은 안 해줘도 될 것이다. 카드 소비지출에 대한 소득공제도 피해집중업종에 대한 수요가 회복될 때까지 기간을 연장해 주지 않으면 약만 올리는 것이 될 수 있다.

요컨대 총액으로 수요를 늘리는 데 그치지 말고, 피해가 큰 업종에 더 많은 지원이 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를 해주기 바라며, 그래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더 늘려도 좋다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감염병 대응 역량확충 예산(2.3조원)은 더 늘렸으면 좋겠다. 비상시를 대비해 단기간에 체육관 등에 입원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재를 비롯하여 방호복, 마스크 등 의료장비를 비축하자. 금년에 많은 금액을 집행하기는 어렵더라도 전국에 큰 병원을 몇 개 지어 평상시에는 노령화로 인해 증가할 환자와 외국인 환자 유치에 활용하고 비상시에는 격리 병동으로 쓸 수 있게 하면 좋겠다. 노령화로 의료수요의 증가가 예상되는데 기부에 의해서만 대규모 법인병원을 지을 수 있게 돼있는 규제 때문에 병원 시설을 늘리기 어렵다. 국가가 책임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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