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 정치도 그렇다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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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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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칼럼]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 정치도 그렇다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묘수'는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이다.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킬 수도 있어 매력적이고 그 효과에 중독되어 스스로 망칠 수 있으니 치명적이다. 묘수는 '뛰어난 솜씨나 교묘한 재주'라는 의미다. 뉘앙스부터 이중적인 느낌이다. 게다가 묘수에 빠지면, 묘수를 짜내기 위해 골몰하다 정작 중요한 '진짜 실력'이 녹슬고, 묘수를 남발하다 스텝이 꼬이고 일관성이 빛바랠 위험이 있다.

그래서일 거다,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고들 한다. 바둑 세계의 격언이다. 묘수는 매력적이지만, 묘수를 '연발'하면서 바둑을 이기기는 힘들다. 이는 기업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영 베스트셀러였던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을 쓴 짐 콜린스. 그는 위대한 기업이 되는 비결 중에 기발한 묘수나 행운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고 했다. 위대한 기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원칙을 일관되게 실행하는 데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치열해져서인가 가벼워져서인가, 요즘 한국 정치에 '묘수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근래 국민들이 목도한 발군의 묘수는 단연 지난해 연말을 뜨겁게 달궜던 범여권 범진보의 공수처법·선거법 패키지 처리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법 통과를 위해 범여 군소정당들과 '4+1 협의체'를 만든 뒤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안을 이례적으로 제1야당의 강력한 저항 속에 강행처리했다.

그야말로 '4+1 묘수 정치'였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통과가 절실했고, 정의당 등 군소 진보정당들은 비례대표 의원 수를 크게 늘릴 수 있는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간절했다. 양측 모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절묘한 한 수였다.

명분도 '당당하게' 주장했다. '4+1'은 공수처가 '검찰개혁'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민심 반영과 다당제를 통한 협치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은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면 의석 수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례 의원 수를 대폭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계산이 나온 정의당은 선거법 개정의 최고 수혜자로 보였다. '4+1' 모두가 행복한, 묘수였다.

문제는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강행처리 전에 예고했던 대로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만드는 묘수를 두면서 시작됐다. 그로 인해 총선에서 제1당 위치를 빼앗길 상황에 처하자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을 맹비난했다. "꼼수이자 불법행위"라며 위성정당 창당을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정신과 취지를 밑바닥에서부터 흔드는 퇴행적 정치행위". 민주당 지도부가 비난하며 한 말이다. 이때까지는 이렇게, 범여권과 제1야당이 묘수를 한 번씩 주고 받고, 여당이 자가당착에 빠진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는 듯 보였다.

그런데 민주당이 '또 다시' 묘수를 들고 나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진보·개혁진영의 비례연합정당'이라는 묘수가 등장한 것이다. 범진보 진영의 당들이 연합해 비례대표 전용 정당을 창당하고 각자 후보들을 파견한 뒤 선거 후 당선자가 각 당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묘수가 계속 이어지자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의원들이 목소리를 냈다. "원칙 없는 패배로 갈 텐가"(조응천), "손해보더라도 원칙대로 했으면 좋겠다"(김두관) 그러나 민주당은 '묘수 정치'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원래 내부적 명분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 "탄핵 세력이 1당이 돼 탄핵을 추진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민주연구원). 중요한 것은 그 내부의 명분에 외부의 국민이, 정확하게는 중도층이 공감할 것이냐다. 진보, 보수 모두 어차피 열혈 지지층은 무조건 지지를 보낸다. 문제는 합리적 진보, 합리적 보수, 그리고 중도의 마음이다. 정치의 승패는 여기서 판가름 난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정수(正手)의 정치'로 돌아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사실 지금은 진보 집권 시대이니 권력을 가진 진보의 묘수 정치가 도드라지게 보이지만, 이건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보수도 다시 집권한 후에는 묘수 정치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묘수 세 번 두면 바둑 진다. 정치도 그렇다. 정수를 두는 정당과 정치인이 결국에는 승리한다. 묘수를 남발하는 '가벼운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정수로 승부하는 '묵직한 진보와 보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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