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 주식시장을 바라보기 어렵다는 증권가의 시각이 한마디로 이렇다. 잇따른 증시 폭락으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투자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할 증권사들마저 명쾌한 투자 가이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전망도 제각각이다. 되레 방향 다른 전망으로 투자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예측 힘들지만'…코스피 전망 '최저 1700 '= 12일 한국투자증권은 이날 최악의 경우 코스피 1700선 수준의 하락이 가능할 것으로 점쳤다. 코스피 연간전망 밴드는 1850~2200p로 하향조정했다. 박소연 연구원은 "코로나19 발발로 일부 타격이 불가피해진 점을 감안해 기존 목표 ROE(8.05)를 7.0%로 낮춘 것인데 코로나 사태가 만약 신용 위험을 야기한다면 1700선도 가능하다"며 "다만 코로나 사태의 점진적 정상화와 각국 중앙은행의 추가 통화완화, 유가하락에 따른 소비진작 효과 등을 감안해 극단적 케이스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추가 급락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KB증권도 이날 서둘러 코스피밴드 변경에 나섰다. 하단만 종전 1900에서 1850로 조정한 것으로 KB증권은 변경 사유로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라는 공급 충격이 발생하면서 1~2개 분기동안의 기술적 경기침체 가능성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변경 후 코스피밴드는 1850~2400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또한 변동성이 매우 커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가이드로 참고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장중 한때 코스피는 1810선까지 떨어지는 등 5% 넘게 빠지며 사이드카가 발동하기도 했다.
증권사들이 저마다 종전 눈높이를 낮추기 시작한 건 걷잡을 수 없이 바닥을 뚫는 증시 때문이다.
대신증권은 전날 일시적인 1900선 이탈 가능성은 유효하지만 추가 하락폭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이경민 연구원은 "코스피의 단기 급등락 과정은 불가피하겠지만 결국 상승추세를 만들어 갈 전망"이라며 "위기에 강한 업종(반도체, 소프트웨어, 전기차, 2차전지 업종이 주도주)이 시자을 주도해 나갈 것인 만큼 저점 매수 전략을 유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저점 매수 전략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 "글로벌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아넣는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공포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고 현실화될 가능성도 낮다"며 "패닉의 강도만큼 글로벌 정책 공조도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증권사들이 내놓은 단기 코스피 고점은 대체로 비슷했지만 정작 중요한 저점과 반등 시점에 대한 의견은 내놓지 않고 있어 투자자들로서는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침체의 갈림길에 놓여있고 지금이 리세션이든 아니든, 충격이 매우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반등의 실마리는 미국과 중극의 관세 철회가 될 수 있는 만큼 관세 철회로 주가가 반등할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해 비관론보다는 긍정에 힘을 실었다.
삼성증권의 경우 전날 하우스뷰 점검에 따른 단기 전망 보고서에서 "돌발 대형악재인 코로나 사태로 기존 전망의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면서도 "코스피가 고점대비 14% 하락해 코로나 충격이 시장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현 주가는 앞으로 도래할 실적 하향조정 뉴스를 대부분 반영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삼성증권은 코스피 단기 전망을 1850~2050선으로 제시하고 '보유 및 관망' 의견을 썼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종합해보면 주식에 대한 연초 낙관적 전망에서 일보 후퇴가 불가피하나 과도한 비관도 금물"이라며 "지금 주가는 잃은 성장만 반영하고 있어 힘들지만 인내하고 관망할 시기"라고 말했다.
◇패닉 속 주식 12조 산 개미…수익률은 '마이너스'= 문제는 잇따른 증시 폭락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역발상 빛날 때'라며 빚내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개인이 있는가 하면 과도한 경계감에 과매도에 나서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명확한 방향이 부재한 속에서 갈팡질팡한 탓이다.
코스피가 4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매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후 이는 더 두드러진다. 개인 투자자들은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1월20일 이후 전날까지 총 12조5005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금이 저점 매수 기회'라 여겨 선제적 투자에 나선 것이지만 이 베팅이 아직 맞아떨어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개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기업 20곳 중 19곳은 주가가 내렸으며 평균 수익률은 -21.80%에 그쳤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하락률(-15.21%)을 밑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향후 지수가 더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빚 낸 투자'가 급증했다는 점도 우려 요인이다. 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총 10조1874억원이다. 코로나19 발생 직전 거래일인 1월 17일 당시 9조7740억원에 그쳤던 신용거래융자 규모는 두 달도 채 안 되는 사이 4134억원 늘어 10조원대로 진입했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개인 투자자가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금액이다. 잔고가 많을수록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빚을 내 주식을 사들인 개인 투자자가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증권사들은 올 초 증시 장밋빛 일색 전망을 경쟁하듯 쏟아냈다. 국내 5대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전망을 종합하면 코스피 지수는 올 상반기 2390까지 도달 가능할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에 증시가 연이어 추락하자 앞다퉈 밴드 하단을 바꿔 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전망이 무의미한 때"라며 투자전략을 제시하지 않는 곳도 있는 상황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스피 하단 1600이 예상될 정도로 빚내 투자하는 투자자들에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위험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매번 소잃은 뒤 외양간 고치는 식의 진단을 내놓기 이전에 주가 추가 하락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보이는 만큼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므로 방어적인 투자전략의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