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

유승화 아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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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0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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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전기차 배터리는 `제2의 반도체`
유승화 아주대 명예교수
지금까지 산업혁명의 변천을 보면 그 단계에 따라 에너지의 변화가 있었다. 인간과 자연의 노동력에서 석탄, 석유 및 전기 에너지로 변해왔다. 또 전력망이 보급되면서 먼 거리까지 에너지를 보낼 수 있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모바일 디바이스, 로봇 등 다양한 기기들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하려면 언제 어디서나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결국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한 초연결 사회의 실현은 고용량·고효율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최근 세계적인 친환경 추세와 꾸준한 기술 발전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의하면 전기차 시장은 2040년에 판매되는 승용차의 57%가 전기차가 될 것이고, 시내버스의 전기차 비중은 81%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25조원인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2023년 96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작년 9월 전기차 배터리 시장 1위는 일본의 파나소닉(37.1%)이 차지하였고 작년 상반기 1위였던 중국의 CATL(22.5%)은 2위에 올랐다. 최근 중국 전기차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순위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올들어 한국기업 LG화학은 중국 CATLLG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2위에 올랐다. 삼성SDI는 4위, SK이노베이션도 7위를 차지했다. 테슬라, 폴크스바겐, 도요타 등에 이어 BMW까지 완성차 업체도 독자 배터리 기술 확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폴크스바겐은 스웨덴 노스볼트의 지분 20%를 인수하고 2023년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며, 도요타는 약 16조원을 투자하여 배터리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테슬라는 생산 공장인 기가팩토리에서 배터리를 자체 생산한다.

올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수요 전망치는 190GWh로 공급량(326GWh)에 비해 모자라지만, 2023년엔 수요가 916GWh로 폭증하면서 공급량(776GWh)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쯤엔 수요가 공급의 두 배 이상 될 것으로 예측한다. 지난해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업체의 연간 배터리 생산량은 53GWh 였지만, 2025년엔 455GWh로 9배 가까이로 늘어날 전망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완성차 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생산성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 원가의 30~40% 정도를 차지하기 때문에 전기차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현재 각종 기술특허와 생산설비 등을 완비한 배터리 업계가 유리한 상황이지만 완성차 업계가 양산에 성공하고 생산성도 갖춘다면 큰 위협이 된다.

차세대 배터리는 2025년까지 리튬이온 배터리가 지속적으로 성능이 개선되고, 그 이후로 전고체 배터리가 차세대 배터리로 자리잡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를 채운 액체전해질을 고체로 바꾼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액체전해질이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액체전해질을 세라믹 등 고분자 고체물질로 대체할 경우 발열과 인화성이 대폭 줄어든다. 또 전고체 배터리는 용량과 부피, 형태의 변형이 자유로우며 무게도 가법다. 현재 전고체 배터리 개발은 일본 기업들이 정부 지원까지 받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향후 배터리 시장의 한·중·일 과점 체제는 독일, 미국 등 자동차 선진국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신규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고 선두 입지를 확보하는 데 수조원 단위의 투자는 물론 7∼10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향후 배터리 시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기술력으로 앞서 나가고 대규모 투자로 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 시장과 비슷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를 게임 체인저로 보고 특허, 소재, 공정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하며 2022년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세계 최초로 출시할 계획이다. 최근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주요 자동차업체와 아사히카세이, 도레이 등 배터리 업체가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공동개발에 적극적이다. BMW는 2026년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를 출시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고 폭스바겐은 미국 스타트업 퀀텀 스케이프의 지분 5%를 인수했으며 현대차도 미국 아이오닉 머티리얼스, 솔리드 파워에 투자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들도 전고체 배터리 연구 개발 중에 있다. 중국 칭다오에너지디벨롭먼트는 장쑤성에 10억위안을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 공장을 구축하였다. 현재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에너지 밀도 극복이 최대 관건이다. 충·방전을 위해서는 리튬이온 이동성이 확보돼야 하는데 액체상태 전해질과 비교할 때 고체 형태에서는 이동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한편 2040년까지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제성이 우위에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토요타가 2022년 양산한다 해도 품질 검증 단계를 거치면 2030년 무렵은 돼야 상용화가 될 것이며 경제성이 확보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반도체 소재사태 같은 것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선 관련 부품소재 산업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 배터리 제조원가의 50~60%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동박 등의 소재로 구성되어있다. 현재 에코프로비엠, 포스코케미칼, SK이노베이션, 엘엔에프, 대주전자, 후성, 천보, 일진머티리얼즈, 두산솔루스 등 다수 기업들이 소재 분야에서 연구·개발·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핵심소재 기술력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일본과 중국은 자국 소재업체들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커다란 내수 시장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기업은 중국, 유럽, 미국 등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등 선제적 투자를 감행하며 해외 자동차 업체들과의 협력을 다져온 것이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특히 BMW, 벤츠, 폭스바겐, 르노, 볼보, GM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대규모로 수주한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되면 한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차세대로 넘어갈수록 기술력 싸움이 승부를 가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도 제2의 반도체로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배터리 부품소재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연구기관·학계·기업들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추진할 수 있는 중장기 연구개발 추진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배터리 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기술 인력이 매우 중요하므로 이를 위한 중장기 인력 양성 추진 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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