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종로5가까지 지팡이를 짚으며 마스크를 사러 온 김순복(86) 할머니는 끝내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정부가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함에 따라 공적 마스크 구매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이날 마스크 구매 가능 대상은 출생연도 끝자리가 1·6인 사람이다. 1934년생인 김 할머니는 약사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이며 "언제 사러 오면 되느냐"고 연신 물었다.
마스크 5부제 첫 시행일을 맞은 종로5가 약국 거리는 생각보다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노년층과 외국인들의 혼란은 여전했다. 특히 본인이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는 대상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약국 앞에 줄을 서 있던 1952년생 이모(68·남) 씨는 직원에게 신분증을 보여준 뒤 "오늘 순서가 아니"라고 안내를 받자 "일부러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허탈한 듯 말을 줄였다. 중국인 박림갈(36·남) 씨도 외국인등록증을 제시했지만 1984년생이라 마스크를 사지 못했다. 박 씨는 "오늘이 아니라 목요일에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얘기를 들었다"며 "(마스크 5부제를) 잘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약국별로 마스크가 입고되는 시간을 놓쳐 구매를 못 하는 일도 빚어졌다. 약국 거리에 위치한 한 대형 약국에는 오전 10시께 공적 마스크가 150장(1인당 2장, 75명분) 공급됐지만, 동 나는 데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시간대를 지나 약국을 찾은 한 노인은 "경기도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못 샀다. 다른 약국도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서둘렀다. 1946년생 임모 씨(74·남)는 "나라에서 살 수 있다고 해서 굳이 왔더니 허탕만 쳤다"며 "오늘 못 사면 주말까지 마스크를 구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더군다나 약국 별 마스크 입고 시간도 제각각이다 보니 혼란은 가중됐다. 실제 다른 약국에는 오후 1시 20분부터 마스크를 판매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이 곳 약사는 "마스크를 공급하는 시간이 일원화돼있는 게 아니라서 입고 시간도 약국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며 "들어오는 대로 판매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중복구매 확인을 위한 시스템에 주민등록번호를 일일이 등록하는 등 약국의 업무 소요가 늘어나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규모가 큰 약국의 경우 그나마 소화할 여력이 있지만, 약사 1명이 운영하는 작은 약국에서는 조제 같은 일반적인 업무가 마비된다는 것이다. 한 약사는 "아내도 나와 일을 도와주고는 있는데 힘에 부친다"며 "손님은 마스크를 달라고 하고, 우리는 (시스템에) 입력해야 해 바쁘다"고 토로했다.
다만 지난주까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긴 줄까지 만들었던 '마스크 대란'은 잦아든 모습이다. 광장시장 옆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거리 끝을 가리키며 "지난주에는 저기까지 줄을 섰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다른 약사도 "5부제가 시행되면서 거리가 많이 한산해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동준기자 blaams89@dt.co.kr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약국에서 시민들이 신분증을 제시하며 마스크를 구매하고 있다. 마스크 5부제 시행으로 약국에서 출생년도에 따라 1주당 1인 2매 구매가 가능하다. 박동욱기자 fuf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