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금융은 왜 만년 3류인가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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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금융은 왜 만년 3류인가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에 던진 화두다. 국가 전체적으로 21세기를 향한 변화에 주목하고 국민·정부·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삼성전자만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나 LG전자 등도 일류 기업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 중에 금융회사만은 아직 일류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일류신한'(一流新韓) 기치를 내건 이유다. 국내 금융회사 중에는 왜 일류기업이 없을까. 일류는 1등이라는 상대적 순위를 뛰어넘는 절대가치다. 조 회장이 꼽은 일류신한의 첫번째 과제도 고객과 사회의 절대 신뢰다.

국내 금융회사가 이류나 삼류에 머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우리금융그룹이다. 우리금융그룹은 2001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다. 14년간 윤병철(2001~2003), 황영기(2004~2006), 박병원(2007~2008), 이팔성(2008~2013), 이순우(2013~2014) 등 5명의 대표이사 회장이 거쳐갔다. 이팔성 회장은 2011년 우리금융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2013년 3월 임기를 1년여 앞두고 불명예 퇴진했다. 2014년에는 민영화 과정에서 지주회사가 해체됐다. 국내 최초의 금융지주회사로 출범했지만 10년 넘게 정권발 외풍에 시달렸다.

금융그룹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은 우리금융그룹만의 일은 아니다. KB금융그룹은 황영기·강정원·어윤대·임영록 등 역대 회장이 사임 내지 해임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윤종규 회장 연임 이후에야 글로벌 금융그룹으로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 '신한 사태'로 내분에 휩싸였던 신한금융그룹은 한동우 회장을 거쳐 조 회장 체제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김정태 회장의 3연임과 함영주 부회장의 은행장 연임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불화를 겪었다. 김 회장 중심의 안정적인 지배구조가 없었다면 그룹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국내 최장수 금융그룹인 우리금융은 여전히 외압에 흔들리고 있다. 민영화를 통해 2019년 다시 태어난 우리금융그룹은 설립 1년만에 회장이 물러날 처지에 몰렸다. 손태승 회장은 5년간의 공백에도 금융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저력을 보였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1등 종합금융그룹 달성'이라는 경영 목표를 제시했다.

손 회장이 1년간 쌓은 우리금융그룹의 지배구조는 금융당국에 의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금융당국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에게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최고경영자에게 내부통제 미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유령주식 배당 사고'를 낸 삼성증권에 대해 금융당국은 전·현직 최고경영자에게 '직무정지'와 '해임 권고'라는 징계를 내린 적도 있다. 리스크관리와 내부통제는 금융회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우리금융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손 회장이 물러날 경우 우리금융그룹의 지배구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외부 출신 회장이 다시금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벌써부터 우리금융그룹 내부에서는 정치권 줄대기 소문이 무성하다. 옛 한일은행 출신과 옛 상업은행 출신 간의 해묵은 갈등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우리금융그룹 민영화는 2013년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시작했다. 최종구 전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우리금융지주의 완전 민영화 의지를 밝혔다. 주인없는 금융그룹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민영화다. 금융위원장이 바뀌자마자 당국 스스로 우리금융그룹의 지배구조를 흔든다면 누가 우리금융그룹을 신뢰하겠는가.

신한금융그룹 조 회장은 채용비리라는 정치적 프레임에 맞서 지배구조를 지켜냈다. 조 회장의 '일류신한'처럼 손 회장의 '1등 종합금융그룹'을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지배구조가 필수적이다. 손 회장은 자신이 만든 우리금융그룹의 지배구조를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다.

김현동 정경부 금융팀장 citizen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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