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2년 여의 긴 불황의 터널 끝에 반등세를 보인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돌발 악재를 만나 위기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코리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장 1분기는 통상적인 비수기라 수요·공급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2분기 이후까지 이어질 경우 수요·공급 전반에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우한폐렴 확산 장기화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한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SK하이닉스 측은 작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현재 상황에서는 큰 특이사항이나 조업상 문제가 없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되면 실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우한 폐렴이 당장 1분기부터 수요·공급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통상 1분기는 스마트폰용을 중심으로 비수기에 진입하기 때문에,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진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 면에서도 당분간 공장 가동 중단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1분기 이후에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공장 가동 중단보다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 시장조사기관 IBS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반도체 수요의 53%가량을 차지하는 글로벌 1위 시장이어서다.
동시에 현지 공장의 가동 중단 가능성도 커진다. 현재는 일정 수준 부품·소재 재고를 확보하고 있지만, 주요 국가들의 대 중국 봉쇄 움직임이 확산할 경우, 부품·소재를 공급할 물류망을 확보할 수 없어서다. 반도체 라인이 멈출 경우 피해는 기간에 따라 수백억원, 많으면 수천억원에 이른다.
그나마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우리 반도체 업계에 긍정적 요인이다. 특히 초기 육성 단계인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거의 외산 소재·장비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버틸 방법이 없다.
업계에서는 모처럼 반등했던 D램 등 메모리 가격의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PC용 D램(DDR4 8Gb 2133MHz) 고정거래가격 평균은 2.84달러로 전달보다 1.07% 상승했다. D램 가격이 반등한 것은 2018년 4월 말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 중국 공장의 가동 중단까지 이어지면 국내 뿐 아니라 세계 반도체 시장 전반의 침체가 예상된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우한 폐렴이 장기화 될 경우 단순히 반도체 경기 뿐 아니라 세계경기 전반의 침체로 이어지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응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나 메르스 사태는 당시 안 좋았던 반도체 시황을 한 단계 더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