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ICT과학부 팀장
![[안경애 칼럼] 데이터산업, 안되면 되게 하라](http://contents.dt.co.kr/images/202002/2020020302102269650001[1].jpg "[안경애 칼럼] 데이터산업, 안되면 되게 하라")
최근 취재현장에서 만난 한 국내 IT기업 데이터 전문가가 던진 말이다. 데이터 3법 통과로 사업환경이 나아지겠지만 구글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답을 찾기 힘들다는 고백이다. 이 기업은 20년 이상 데이터 사업에 투자했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았다. 매출이 인력·기술 투자규모에 미치지 못 하다 보니 작년까지 데이터 사업에서 적자를 이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데이터 활용규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같은 그룹 계열사의 데이터조차 결합하는 길이 막히다 보니 파괴력 있는 사업모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금융·의료·통신 등 묶이면 힘을 발휘할 타 분야 데이터를 연계할 방법도 없었다.
국내 기업이 규제에 발목이 잡힌 사이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로 불리는 미국 IT공룡들은 데이터를 무기로 강력한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 중에서도 구글은 디지털 세상을 사실상 천하통일 했다. 스탠퍼드대학의 두 천재가 만든 독창적인 검색엔진은 '데이터 파워'로 이어졌고, 세계인의 컴퓨터 화면을 마치 자기 안방인 양 광고로 장식하고 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통해 모바일 생태계까지 장악하며, 스마트폰 앱에서 만들어진 각종 데이터도 빨아들이고 있다. 데이터로 세상을 바꾸겠다며 우주의 원자 수를 합한 것보다 큰 숫자인 '구골(Googol·10의 100제곱)'에서 사명을 따온 구글의 목표는 현실이 됐다.
산업현장의 전문가들은 데이터 3법만으론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는 게 역부족이라는 회의론을 제기한다. 기업이 데이터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환경이 여전히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우선 활용 가능한 가명정보의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은 게 문제다. 바뀐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개인 식별이 힘든 가명정보의 개념을 도입해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에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비식별화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면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허용된다.
그런데 개인의 식별 요소를 얼마나 제거해야 가명정보인지 명확하지 않다. 기업 간 데이터를 결합해 가명처리를 하려면 정부 허가를 받은 데이터거래소를 이용해야 하는데, 가명처리 과정에서 혼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명화 조치가 적정한 지 누가 검증하고, 데이터 결합 시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되는지도 정해진 게 없다.
가명정보의 상업적 활용을 막고 연구용으로는 허용했는데, 연구와 상업의 구분이 애매하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제약사의 신약 개발은 공적 연구와 상업적 목적을 동시에 가진다. 데이터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만든 법인데, 가명정보의 상업적 활용을 막는 것도 앞뒤가 안 맞다는 지적이다. 통계 분야 활용과 관련, 신용정보법은 '상업적 통계 작성', 개인정보보호법은 '통계 작성'을 허용하는데 둘 간의 차이도 모호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이미 데이터 철옹성을 세운 GAFA 기업과 대결하려면 차별화된 가명정보가 유일한 무기인 만큼 기업에 더 많은 기회를 주고, 가이드라인도 명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데이터 분야만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아니라, 하면 안 되는 것만 정하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급격하게 바뀌는 산업을 미리 규정하고 규격화할 경우 자칫 국내 기업의 발목만 잡을 수 있다.
다양한 실험과 도전 기회를 열어주되, 개인정보 관리와 비식별화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기업에는 엄격한 페널티를 주면 된다. 7월 법 시행에 맞춰 마련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데이터 산업 육성' 취지에 맞는 전향적 조항들을 담아야 한다. 진료정보의 제3자 제공을 금지하는 의료법 등 각 산업별 법·제도에 숨은 규제를 푸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굳어진 관행과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도 필요하다. '구글제국'의 식민지 신세를 면하기 위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안경애 ICT과학부 팀장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