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칼럼] 겸손은 어떻게 보수의 무기가 되는가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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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3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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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칼럼] 겸손은 어떻게 보수의 무기가 되는가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현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철학인가, 후흑학(厚黑學:뻔뻔함과 음흉함에 대한 학문) 같은 처세술인가. 일부 인간의 뻔뻔함과 오만함에 질린 나머지, 철학이라 답하는 사람은 순진한 것이거나 겉과 속이 다른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세상의 생각에 의외의 제목으로 허를 찔렀던 책이 지난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랐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철학이 현실과 유리된 고리타분한 학문이라는 생각은 틀렸으며,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그럼 거친 한국 정치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힘이 되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품격, 책임, 겸손 같은 덕목인가 아니면 뻔뻔함과 오만함인가. 거칠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요즘 한국 정치는 연말 선거법, 공수처법 강행 처리의 분위기가 새해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4월 총선으로 향하고 있는 정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분위기는 상반된 모습이다.

보수는 위기다. 연말 '1+4 진보여권'에 완패했던 보수는 새해 들어서도 '분열'과 '무기력'한 모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황, 실업난, 부동산 급등, 북핵문제, 조국사태, 검찰인사 등 보수에 유리한 여건 속에서도 그렇다. 중도를 포함한 범보수의 치명적 문제는 '분열'이다. 총선을 앞둔 지금도 사분오열이다. 이래서는 지난 총선, 대선, 지방선거에 이은 '4연속 패배'가 불을 보듯 분명하지만, 각 그룹의 리더들도, 의원 개개인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오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진보 여권은 기세등등하게 '진격'하고 있다. 민주당은 '20년 집권', '50년 집권'을 외치고 있다. '사회적 패권 교체'까지 주장한다. 역시 오만함이 느껴지는 진보의 질주는 보수와 중도의 지리멸렬한 분열에도 커다란 책임이 있다.



보수의 위기는 곧 한국 정치의 위기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정치에서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결국 우세한 쪽의 오만으로 인한 국민의 불행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위기의 보수가 회생할 해법은 있는가. 해법은 보수의 핵심 가치인 '겸손'을 통한 자신의 약점 파악과 변화, 통합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 능력에 대한 겸손, 세상에 대한 겸손은 진정한 보수의 핵심 가치이다. "개인은 어리석지만 인류는 현명하다"고 한 에드먼드 버크의 말처럼, 개인이 갖는 한계와 불완전성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역사를 통해 축적된 지혜를 존중한다.

그렇다면 겸손은 지금, 어떻게 '보수의 무기'가 될 수 있는가. 겸손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배우고 개선하며 발전할 수 있다. 약점을 볼 수 있게 해주어 변화와 혁신을 통해 보완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오만은 그 반대다. 오판하게 하고, 무너지게 한다. 보수가 겸손이라는 덕목을 되찾을 수 있다면, 왜 지금 국민의 마음을, 청년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겸손은 국회의원인 내가, 당대표인 내가, 대통령인 내가, 몇 년 후에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그런 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자유, 민주, 시장이라는 '대의'와 선거 승리를 위한 양보가 가능해진다. '사분오열'이 아니라 '대통합'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황교안, 유승민, 안철수, 홍준표, 오세훈, 원희룡 등 각 그룹의 리더들이 범보수라는 울타리 속에서 공존하며 경쟁하고 승복하는 과정에서 흥행에도 성공해야, 총선은 물론 대선도 희망이 생긴다.

'겸손'을 통한 '변화'와 '통합'이 총선을 앞두고 있는 위기의 보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했지만, 나는 "겸손은 모든 미덕 가운데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다"라는 T.S.엘리엇의 말에 동의한다. "겸손해지지 마라. 당신이 그 정도로 위대하지는 않다"라고 한 G.마이어의 말도 수긍한다. 그 정도로 겸손은 어려운 덕목이니, 한국의 보수가 총선 전 3개월 안에 그 '위대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어려움만큼, 겸손은 변화와 통합이라는 강력한 힘을 보여줄 수 있음도 분명하다. 겸손이 보수를 만든다. 겸손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진정한 보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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