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우한폐렴과 적벽대전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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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우한폐렴과 적벽대전
박영서 논설위원
중국 후베이(湖北)성의 성도(成都) 우한(武漢)은 창장(長江)과 한장(漢江)이 만나는 곳이라 예로부터 수로를 이용한 물류 중심지였다. 이 곳은 삼국지의 하이라이트 '적벽(赤壁)대전'이 일어났던 적벽과도 가깝다. 북방을 통일한 조조는 서기 208년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다. 조조는 적벽에 이르러 오·촉 연합군과 대치했다. 그런데 북방에서 내려온 조조의 군사는 뱃멀미가 심했다. 이때 연환계(連環計)와 고육지책(苦肉之策)이 등장한다. 조조는 유비의 책사 방통의 계략에 말려들어 배들을 10척씩 쇠사슬로 묶어 놓는다. 군사들은 뱃멀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화공(火攻)에 약했다. 결국 조조의 함대가 모조리 불에 타면서 적벽대전은 오·촉의 대승리로 끝난다.

소설 삼국지에는 이렇게 적벽대전이 소개돼있다. 하지만 대부분 내용은 흥미롭게 각색된 것이다. 실제로는 조조의 대군이 패배한 이유는 역병(疫病) 때문이었다고 한다. 북방에서 내려온 위나라 군사는 남쪽의 풍토와 맞지 않았다. 온도가 높고 습기 많은 곳으로 원정을 왔으니 발병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수많은 군사들이 역병으로 죽어나가면서 기세가 꺾이자 조조는 철군을 단행했다. 역병이 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것이다.

조조의 군대를 괴롭혔던 역병이 정확히 어떤 전염병인지는 모른다. 그런데 약 1800년이 흐른 후 이 지역을 덮친 역병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인 것은 분명하다. 일명 '우한 폐렴'이다.

우한 폐렴은 지난해 12월 12일 우한에 있는 화난(華南)수산도매시장에서 최초 감염이 이뤄졌다. 이후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선 고열이 계속되어 병원을 찾았는데 입원을 거부당했다는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그러나 당국은 이런 글을 삭제하면서 쉬쉬했다. 발병 보름 이상이 지난 12월 31일 중국 보건당국은 이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1월 9일 저녁 첫 사망자가 생겼고 14일 우한시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 체온계 등 검역장비가 설치됐다. 그 사이 바이러스는 중국 국경을 넘어 확산됐다. 태국에서 발병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중국 정부는 확산을 막기위해 진원지인 우한을 봉쇄했다. 항공과 기차편, 시내 대중교통 운영을 중단했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성도 급 도시가 봉쇄된 것은 신중국 건국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이미 우한 인구의 절반 수준인 500만명이 우한을 빠져나간 뒤였다. 지난 12월 30일부터 우한이 봉쇄되기 직전인 지난 22일까지 우한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간 여행객만도 6000명이 넘는다는 추정치도 나왔다.

전염병은 초기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확산을 초기에 차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탓에 우한 폐렴은 급속도로 퍼졌다. '우한 봉쇄'도 소용없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조치였다. 우한시 보건당국이 '사람 대 사람 감염' 여부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놓은 것도 확산을 키운 요인으로 지적된다.

우한 폐렴 확산은 인재(人災)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주의, 그리고 정보 통제가 숨어있다. 2003년 사스 발병 때도 은폐와 통제에 급급하다가 걷잡을 수 없이 병을 키운 바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 17년 전과 변한 것이 별로 없는 듯 하다. 승진이나 보신을 위해 '윗 사람' 밖에 보지않는 관료들의 '체질'이 이번에도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나선 후에야 당 간부와 관료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 주석이 "단호하게 병의 확산 추세를 억제하라"고 강력 주문하자 조처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만연된 관료주의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윗 사람 지시가 없으면 납작 엎드려 눈동자만 돌리는 관료는 어느 나라건 '내부의 적'이다. 이번 사태를 돌아보면 정부와 관료들이 명심해야할 원칙이 확연히 보인다. 큰 일이 발생하면 바로 신속하고 솔직하게 알리라는 것이다. 잘못도 빨리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재앙을 키우지 않는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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