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정부가 2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한 '5%룰(주식대량보유 공시제도) 완화' 등의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한 투자자가 경영참여 선언 없이도 정관변경 요구나 임원의 해임청구 등을 쉽게 할 수 있게 변경되면서 기업경영의 자율성이 극도로 침해될 수 있다는 데 따른 것이다. 특히 국내기업의 가장 큰 투자자로 꼽히는 국민연금이 이들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제한하는 루트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공정경제 등을 표방하면서 자본시장법 시행령의 일환인 '5%룰의 완화'를 통과시켰는데,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에 개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게 아닌가 싶다"면서 "정부의 취지는 좋으나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규제로 작용하니까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교수는 "임원들 해임요구라든지, 보수나 배당이 어떻다든지 등을 일일히 간섭하기 시작하면 경영권의 자율성과 사적자치 등의 가치가 침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5%룰 등은) 일본·미국·영국에도 다 있는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제도"라면서 "오히려 영국은 5%가 아닌 3%로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영국과 같은 3%룰로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5%룰 완화' 조치에 대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것으로 보여진다"면서 "굉장히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교수는 "국민연금의 본질은 정부가 국민의 노후 저축자금을 대신 운용해서 수익률을 내주는 것"이라면서 "이 같은 본질에서 벗어나 정부나 국회가 이 같은 문제를 공론화하지도 않고, 시행령 개정안으로 통과시키는 것은 국민과 정부 간의 신뢰를 깨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예컨대 정부가 공적경제라는 명분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내세워 사회적 책임이나 공공성을 강화하라고 주문한다면 기업들은 건전성이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권한과 책임이 증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의 권한과 책임이 증대되는 만큼 내부역량제고 및 독립성 강화 부문도 같이 해결되어 가는 식이어야 한다"면서 "국민연금의 역량제고와 독립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기업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루트(길)을 계속 키워주는 것은 심하게 이야기 하면 어린애한테 칼을 쥐어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어린 아이가 커서 능력이 있고 판단력이 생기도록 해야한다"면서 "한국은행처럼 독립으로 결정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일본만해도 일본정부가 아웃소싱해서 펀드회사에 (주주권 행사를) 위임한다"고 덧붙였다.황병서기자 BShwang@dt.co.kr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왼쪽부터),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디지털타임스DB 및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