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20일 귀국 후 첫 공식 일정으로 호남을 택했다. 바른정당과 합당 과정에서 실망하고 돌아선 호남 민심을 다시 되돌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안 전 대표가 호남 민심을 살피겠다는 행보를 보이자 호남계는 즉각 견제의 목소리를 내놨고, 바른미래당은 환영의 뜻을 밝히며 친정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다.
1년 4개월 만에 돌아온 안 전 대표는 이날 서울 국립현충원과 광주 국립 5·18 민주 묘역을 차례로 들러 참배했다.
오전 일정으로 서울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안 전 대표는 무명용사 위령탑을 가장 먼저 찾았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김영삼·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순으로 참배에 나섰다. 동선상 가장 가까운 묘역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부터 참배했다. 국민의당 시절 자신의 지지 기반이었던 호남 민심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안 전 대표는 방명록에 "선열들께서 이 나라를 지켜 주셨다. 선열들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더욱 굳건히 지켜내고 미래세대의 밝은 앞날을 열어 나가겠다"고 적었다.
안 전 대표는 이후 광주광역시로 향했다. 안 전 대표는 광주 국립 5·18 민주 묘역을 참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영·호남의 화합과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호남에 기반한 국민의당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역사의 고비마다 물줄기를 바로잡는 옳은 길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해 서운했을 것이다. 늦었지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안 전 대표는 귀국 직후 공항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실용적 중도 정당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붓겠다고 공언했다. 호남 기반의 제3지대 신당 가능성에는 "노선과 방향이 제일 중요하다"며 "노선이 맞다면 많은 분들의 힘을 구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안신당(가칭) 등 호남계는 안 전 대표의 행보에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장정숙 대안신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호남은) 안철수 정치의 최종 선택을 보수영남으로의 퇴행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호남이 품고 있는 회한과 분노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몽상가적 정치관을 함부로 가르치려 하지도, 호남 민심을 왜곡하지도 말 것을 경고한다"고 날을 세웠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도 이날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안 전 대표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한 것을 겨냥하며 "큰절을 하면서 귀국하는 것을 보니 많이 잘못했나 보다. 독일로 갈 때는 기자한테 쫓겨서 가방을 메고 도망치더니 들어올 때는 큰절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안 전 대표가 앞으로 바른미래당과 함께 한국 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여건을 마련하고 힘껏 돕겠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당과 나라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를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재훈 바른미래당 사무총장 역시 "약 9개월에 걸쳐 겪은 갈등과 내홍, 대립은 보수통합을 저지하기 위한 결과의 산물과 과정이었다고 판단한다"며 "지금도 혹시나 기호 2번을 달고 출마를 고민하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당내에 있다면 손 대표와 안 전 대표의 뜻을 받들어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대동단결해 실용적 중도개혁주의로 나아갈 것을 주창하고 제안한다"고 했다.
보수통합 논의를 진행 중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도 안 전 대표에게 지속적으로 구애를 보내고 있다. 박형준 혁통위원장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안 전 대표가) 제3 세력으로 독자적으로 존립하기가 여의치 않다"며 통합 합류 가능성을 열어뒀다.윤선영기자 sunnyday72@dt.co.kr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20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열사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