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 박정일 기자] "이제 탈정유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입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실적 부진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석유·화학 산업 전반이 비상이다. 이란 발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불안에 수요 부진에 따른 정제마진 악화까지 겹치면서 전반적인 수익성 악화 상황에 처했다.
◇정유·석화업계 수익성 비상= 19일 업계에 따르면 정제마진 하락 등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정유·석유화학 업계 전반의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애초 증권업계가 예상한 작년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실적 전망) 평균이 2000억원대 초반이었지만, 최근에는 700억원대까지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이 속속 나오고 있다.
에쓰오일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 전망치는 SK이노베이션과 비슷했지만, 이후 400억원대까지 하락했을 것으로 보인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비상장사라 증권사 실적 추정치는 없지만, 적자 전환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정제마진 악화가 주 요인이다. 10월 초까지는 정제마진이 손익분기점(4달러)을 상회했지만 10월 4째주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4달러 위로 올라간 적이 없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마이너스 마진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과거 효자 품목이었던 파라자일렌(PX) 가격 하락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화학업계도 마찬가지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역시 에틸렌 가격 하락으로 인해 영업이익이 증권가 예상치 평균보다 하락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당분간 상황이 호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점이다. 미·중 1단계 무역협정 체결이 그나마 호재이지만,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 우려가 여전하고 보호무역에 따른 수요 부진 역시 당분간 높지 않아서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갈등에 대해 "중동지역의 긴장 강도는 결과적으로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긴장 강도를 보일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며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업체, 항공업체 손익에는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배터리·고부가·친환경 등 사업전환 속도= 이에 따라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올 들어 사업 다각화에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당분간 시황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운 만큼 사업다각화로 불확실성을 최소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은 최근 미국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공장의 추가 증설 계획을 연내 확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1분기 내로 감압잔사유 탈황설비를 본격 가동하는 등 고부가 석유제품의 비중을 늘릴 방침이다.
상대적으로 비정유 부문의 사업 비중이 낮은 GS칼텍스의 경우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까지 가능한 토털 에너지스테이션 확대를 추진하는 등의 사업다각화 노력을 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5조원을 투자한 1단계 복합석유화학 시설을 준공해 가동 중이고, 2023년까지 추가로 7조원을 투자해 고부가 석유화학 사업 비중을 늘릴 방침이다.
LG화학은 배터리 사업 비중을 오는 2024년 전체 매출의 50%까지 늘린다는 계획에 맞춰, 최근 제너럴모터스(GM)과의 합작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등 비정유 사업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롯데첨단소재를 합병해 기초소재부터 고부가까지 이어지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여전하지만 올 상반기 내 미·중 갈등 완화에 따른 실적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화와 친환경 정책 강화 등의 큰 흐름은 변함이 없는 만큼 고부가 소재와 배터리 등 사업 다각화 노력은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작년 말 SK에너지 직원들이 약 1조원을 투자해 건설 중인 VRDS(감압잔사유 탈황설비) 공사의 기계적 준공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