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총량불변`의 오류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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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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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총량불변`의 오류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대한민국의 일자리 총량은 정해져 있는가? 이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의 경제 정책을 보면 대부분 "그렇다"라는 답을 전제하고 있다. 근로 시간 단축, 청년과 노인의 일자리, 수도권 규제, 기술발전과 생산성, 비숙련 노동 국가와의 교역 등에 관한 생각과 정책들이 모두 그런 것들이다.

주 52시간으로 근로 시간을 제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정책에는 고된 근로 시간을 줄이려는 의도와 고용을 늘리려는 의도가 있다. 물론 의도에 상관없이 결과는 마찬가지다. 근로 시간 단축이 고용 증가로 이어지려면 임금이 이전보다 낮아져야 한다. 채용과 훈련, 공적 보험 등과 관련된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여가 시간의 증가를 선호하지만 임금이 깎이는 것은 싫어하여 낮아진 임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기업의 생산 단가는 높아지고 노동수요는 감소한다. 고용이 감소하고 소득이 떨어진다. 육체적 고단함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실업에 따른 정신적 피로는 더해진다.

청년들과 장년·노인들의 일자리는 서로 대체 관계에 있는가? 정년 연장이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도 대한민국에 노동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잘못된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각 연령층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이들 간의 일자리 혼합 양상과 비율도 변한다. 이들의 일자리는 서로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 관계에 있다. 수도권 공장 설립을 규제하면 그런 공장들이 지방에 설립되어 지방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희망도 총량 불변의 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설립될 공장의 총량은 정해져 있지 않다. 국내의 입지 조건이 맞지 않으면 공장은 외국으로 가거나 아예 설립되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면 고용이 감소하는가? 기술 발전으로 이제까지는 없었던 물건들, 이를테면 컴퓨터나 인공지능(AI)을 장착한 기계 등이 생기고, 이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긴다. 또 새로운 기계와 방법으로 기존의 물건들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여 고용이 감소할 수 있다. 즉 특정 직업과 지역에서 고용이 감소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새로 생기는 일자리와 사라지는 일자리 간의 시차(時差)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기계 제작과 방법 개발을 위한 노동 수요와 전반적 소득 증가로 노동 수요가 증가하여 일자리가 늘어난다. AI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AI 관련 산업에서 생기는 일자리 수가 사라지는 일자리 수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다.

생산성 증가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지만,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이렇다. 기업의 노동에 대한 수요는 생산성과 임금 간의 관계에 의존한다. 기업이 투자를 적게 하여 생산성 증가가 둔화되면, 노동자들의 임금이 이전보다 더 적게 오르지 않는 한, 한계(추가적)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용은 그가 생산하는 물건의 가치를 상회한다. 따라서 그 노동자는 해고되어 고용이 감소한다.

A국의 비숙련 노동자들이 만드는 물건을 B국이 수입하면 B국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설명도 틀리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B국의 비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감소한다. 그러나 무역을 통해 A국이 부유해짐에 따라 B국의 숙련 노동자들이 만드는 물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B국에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설령 B국의 일자리에 미치는 전반적 영향이 미미하더라도 일자리는 비숙련 노동에서 숙련 노동으로 바뀐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무역으로 양국의 소득과 고용은 증가한다. 인간 세상에 총량이 정해진 것은 없다.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 정부가 고용을 증가시키고 경제 성장을 이끌려면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고, 자본가-기업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자유 시장경제는 인류를 굶주림에서 해방시켰고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번영을 선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찬사는 커녕 비난만 받아왔다. 인간 세상에서 해결될 수 없거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자유 시장경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작금의 한국경제의 저성장은 바로 그런 어리석음의 결과다. 만일 저성장이 의도적이라면 '어리석은 일'은 '나쁜 짓'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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