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이슈, 政爭에 묻혀… `기적의 공든 탑` 무너질까 두려워"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폭넓고 속도 빠른 4차 산업혁명, 국가·계층 양극화 심화… 정부 규제 합리화 필요
관료들은 科技 전문가 아냐… 규제 정비 계획 단계부터 현장 목소리 충분히 들어야
노벨상에 접근한 과학자 17명… 단기 과제 벗어나 도전·실패 허용하는 문화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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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 이슈, 政爭에 묻혀… `기적의 공든 탑` 무너질까 두려워"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前환경부장관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前환경부장관


김명자 회장은 "4차 산업혁명시대 산업간 융합이 전방위로 일어나고 있다"며 " 일찍이 유례없는 사이버-물리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이 형성되고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이 가속화하는데 따라 과학기술의 향방과 정책에 대한 고민을 보다 심도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총 회장으로 지난 3년을 돌아보며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에 과학기술 이슈별로 공론화장을 열고, 규제개선과 인력양성, 정책제안 등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 등 다른 부문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노력을 한 게 보람있다"고 했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라는 책을 내셨는데, 제목처럼 방대한 저술이던데요.

"저 자신 학창시절에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시험 칠 때 연대기를 졸졸 외우고 시험 끝나면 잊어버렸거든요. 요즈음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주 훌륭한 교재가 많더라고요.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역사에서 너무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는 거예요. 특히 젊은이들이 역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고 있어요. 신기술에만 집착하는 오늘의 기술사회에 대한 우려가 커요. 그런 관점에서 역사 속의 산업혁명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에 주목해 스토리텔링을 엮었습니다. 1차 산업혁명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기술적 경제사회적 동인을 살피고 역사 속의 산업혁명이 경제·사회·정치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정리해서 독자들과 함께 생각할 기회를 갖고 싶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역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는 뜻은?

"책에도 쓴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게요. 지난 7월 스탠퍼드대학교의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20세기의 빅3'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인데요, 빅3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지도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입니다. 이들 빅3 연구의 대가인 데이비드 케네디(루스벨트 연구), 앤드루 로버츠(처칠 연구), 스티븐 콧킨(스탈린 연구) 교수의 대화에서 로버츠 교수가 몇 년 전 영국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어요. 영국 청소년의 20%가 자국의 총리를 두 번 지내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처칠을 허구적인 인물이라 답했답니다. 그리고 47%는 셜록 홈즈가 실존인물이라 답했고, 53%는 엘러너 릭비(비틀스의 1996년 앨범에 수록된 노래의 여주인공)를 실존인물로 골랐다는, 웃지 못 할 얘기입니다. 이런 일이 어찌 영국만의 일일까요. 우리 신세대가 한국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책에서 산업혁명을 다루면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비중 있게 다루셨던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미국을 무대로 진행된 2차 산업혁명(1870~1930)이 한창 무르익던 1910년 영국의 노먼 에인절은 '위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이란 책을 펴내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해요. 그 책에서 그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세상을 예측했답니다. 2차 산업혁명으로 세계가 경제적으로 통합되고 상호 의존도가 높아짐으로써 산업국가간 전쟁은 얻는 것은 없고 잃는 것만 커졌기 때문에 일어날 이유가 없어졌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1914년 첫 번째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저항한 민족주의 운동에서 비롯돼 추축국과 연합국으로 갈리는 세계대전이 되어버린 겁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미증유의 물질적 풍요를 누려야 할 1929년 느닷없이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로부터 미국발 대공황이 일어나고 세계적인 경제 대공황으로 번졌습니다. 왜 그랬을까? 이유를 찾고 싶었고 책의 주요 주제가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9년 베르사유 협정으로 봉합되지만, 그 이후 불안정한 국제질서에 경제 대공황이 겹치면서 세계는 대혼란에 빠지고, 결국 다시 제2차 세계대전에 휩쓸린 겁니다. 남아메리카를 제외한 전 세계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56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최대 참상의 전쟁을 치른 것이죠."

-이후 1948년 소련의 핵실험과 얼어붙은 냉전시대 얘기, 그 무렵의 전력 증강 경쟁도 흥미롭던데요.

"냉전은 예고되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역사상 유례없이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 일본의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소련의 공산주의와 서방 연합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손을 잡지 않았습니까? 전쟁 중 연합국의 이 불안한 동거는 종전 후 미소 양대 진영의 냉전시대로 분열됐지요. 1945년 5월 독일 항복 이후에도 버티고 있던 일본에 1945년 8월 원자탄이 투하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되지만, 1949년 소련의 핵실험 성공으로 냉전시대는 꽁꽁 얼어붙게 되지요. 산업화에 뒤졌던 중국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실패하고 그 만회를 위해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겪게 됩니다."

-산업혁명과 케인스주의, 그리고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를 다룬 내용도 있던데요.

"1930년대 대공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뉴딜 대통령'이라고 불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케인스의 경제이론과 비슷한 정책으로 정부의 개입을 강화했고, 이어서 '전쟁 대통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관리하면서 여전히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경제적 난국을 겪고 3차 산업혁명 시기로 접어들면서 세계경제는 케인스주의로부터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로 돌아섰어요. 1974년 하이에크는 노밸경제학상을 받으며 부활했죠. 1979년 취임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1981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글로벌 디지털화의 기류를 타고 사람, 자본, 상품, 정보, 서비스, 기술이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의 물결이 드높았고 그 가운데 불현듯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금융위기가 닥쳤던 겁니다. 2010년대 후반 4차 산업혁명기에도 금융위기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고, 강대국들이 앞장서서 국가주의에 기반을 둔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의 질서를 교란시키고 있어요. 이런 초유의 현상은 오늘날에도 지구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어서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산업혁명과 관련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산업혁명을 거치며 세계 GDP는 크게 증가했고, 사람들의 삶의 질은 엄청나게 좋아졌습니다. 사람다운 삶에 필요한 요소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별 차이가 없을 겁니다. 수명, 건강, 생계, 직업, 재산, 교육, 여가생활, 행복 그리고 자유, 평화 등이겠지요. 이들 항목은 통계 수치로 측정할 수 있고 시공간의 변화에 따른 비교가 가능합니다. 예컨대 평균수명의 경우 인류 역사상 평균 기대수명은 30세 정도였으나 현재는 80세를 넘어선 국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산업혁명도 빛과 그림자의 두 모습으로 전개됐습니다.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근대사에서 산업혁명에 앞서간 국가가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개방과 혁신은 불가결의 요소였다는 것, 혁신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분야가 바로 과학기술이고 과학기술 혁신이 국가 경제와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었다는 것, 산업혁명기에는 그 차수가 높아질수록 국가 간이나 개인 간의 빈부격차가 벌어져서 이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 국제적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심화된다는 것, 핵심 산업기술간 융합으로 새로운 혁신이 창출되는 것에서 나아가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 사이의 융합이 중요하다는 것 등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치 일변도로 흐르면서 중차대한 이슈들이 다 묻히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이렇게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는 동안, 지금까지 쌓아올린 '기적'의 공든 탑이 어떻게 될지 우려가 됩니다. 하루 빨리 심기일전 해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에 나서야 하는데…."

-4차 산업혁명의 전개에서 기술혁신은 봇물이 터진 것처럼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의 창립자이자 당시 회장이었던 클라우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오고 있다"고 말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논의가 시작됐잖아요? 지역에 따라서 디지털 혁명, 인더스트리 4.0, 소사이어티 4.0 등의 용어를 쓰기도 하지만, 디지털 전환이나 인더스트리 혁신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은 분명해요. 그 기술적 동인은 AI·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클라우드·빅데이터·로봇·드론·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등을 중심으로 기술간, 산업간 융합이 전방위로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그 결과 일찍이 유례없는 사이버-물리 시스템(Cyber-Physical System)이 형성되고 산업구조와 시장경제 모델이 바뀌고 있어요. 사이버-물리 시스템의 단적인 특징은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입니다. 물리적 기술, 디지털 기술, 생물학적 기술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모든 부문에 유례없는 질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거든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일부 논란이 있이요. 1차, 2차 산업혁명은 그것이 진행되고 난 뒤 수십 년 지나서야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는데, 3차 산업혁명 용어에 대한 학술적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논리입니다. 과총이 2017년 5월부터 2년 연속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과학기술계 인식 조사'를 했는데, 2017년에는 응답자 2350명 중 89%가, 2018년에는 2761명 중 81%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답했어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서 '어떤 법적, 제도적 규제 혁신이 가장 시급한가?'라는 질문에는 연구개발 관련 규제 합리화와 과학기술 기본법 등의 법과 제도 정비를 1, 2순위로 꼽았어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한 일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계가 각 분야에서 대변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 대전환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기로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거지요."

-그렇다면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무엇이 중요한가요.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지,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에는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인지, 직무역량과 거버넌스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 새로운 가치관과 윤리는 어떻게 요동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수많은 예측이 나오긴 했지만, 어느 예측이 맞을지는 알 수 없을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요. 다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은 확실하고, 인류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질 것도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경영학의 거장 피터 드러커의 말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길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봐요. 정책 대응에서는 우선 새로운 기술과 산업 사이의 융합혁신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합리화하는 것이에요. 여기서 방심하고 뒤처진다면 결국 선진 기술과 산업에게 시장만 내어주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또 한편으로는 포용적 성장 정책의 실효를 거두어야 해요. 역사적으로 산업혁명기에는 그것을 잘 이용하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 사이에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 특징이 있었어요. 4차 산업혁명은 그 폭이 넓고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국가간, 계층간 양극화가 더 크게 벌어질 겁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과 산업을 진흥시킬 수 있는 규제 합리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기본은 역시 과학기술계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살리고, 사업화와 투자를 촉진할 수 있도록 기업가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규제가 합리화돼야 합니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는 등 신산업 활성화를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나 잘 안 되고 있어요. 예컨대 온라인과 오프라인 시스템과 그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규제당국인 관료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규제를 정하는데 있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합니다. 특히 과학기술 R&D에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인공지능, IoT, ICT, 융합, 핀테크 등과 바이오 분야의 배아줄기세포연구, 유전자가위기술 등의 연구개발과 상용화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들 신생 분야는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빨라서 골든타임을 놓치기 쉬워요. 시장과 규제의 적절한 조화가 절대 필요합니다. 자칫 규제 일변도로 가다가는 국내는 외국 기술과 기업의 시장으로 전락할 수 있어요."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에 사회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윤리와의 부조화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생명공학은 인간 유전자도 조작할 수 있는 단계에 와있습니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인간은 지구 45억년 역사에서 생명을 조작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왔는데, 유전병이나 질병치료용 등 특정한 목적을 갖고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면 허용돼선 안 된다고 봐요. 인체의 어느 기능을 증강시키기 위해 이용되면 괴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리 문제가 제어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윤리는 인간의 가치잖아요, 기술은 그 한도를 모르잖아요. 그런데 어느 가치가 더 앞서는지 기술이 압도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또 과학자에 따라 그런 고민 없이 기술이 가는 대로 간다면 재앙이 될 수 있어요. 과학자들이 우선 윤리의식을 가져야 해요. 디지털 데이터기술과 코딩도 마찬가진데요, 저는 모든 새로운 첨단과학분야에서는 윤리가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리교육, 윤리의식이 함께 가야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과학기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재앙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윤리 문제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해소하려고 하거나 소위 공론화로 결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학기술의 발전은 선형적인 게 아니거든요. 시간이 감에 따라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막 점프를 하거든요. 돌출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 봐선 모두가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아닌 사람들이 공론화 같은 것으로 과학기술을 재단하려는 것도 문제고요. 또 정치는 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고요. 그런데 책에서도 제가 썼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정치 일변도예요. 정치가 블랙홀이에요. 정치가 모든 걸 빨아들여가지고 돼야 될 일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요. 정치가 과학기술의 각 분야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잖아요. 과학기술자들도 다 분절이 돼있어요. 전체를 다 과학기술계가 알면서 어느 방향으로 가자고 할 수 없거든요. 자기 분야에 깊게 들어가야 좋은 논문을 내거든요. 그래서 '전문가 바보'라는 말이 20세기에 나왔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는 바보라는 것이지요. 하물며 정치 쪽에서 이걸 이해할 수 없지요. 예를 들어 바이오사이언스 쪽을 보면 진흥을 시켜야 하는데 정치가 생명윤리라는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못하게 하면 우리는 외국에 시장만 내주게 되거든요. 과학기술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입니다. 잘못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이 설정돼야 하고 윤리가 함께 가야 합니다. 지금 바이오의 경우는 생명윤리 때문에 이중으로 규제를 받고 있어서 기초연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균형을 맞추기가 참 쉽지 않아요. 시기에 따라 달라져야 하거든요. 규제하는 관리는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순환보직에 전문성 갖추기가 어렵거든요.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규제가 나오면 자꾸 괴리가 생기는 거지요. 현장이 요구하는 것에 더 귀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처럼 과학기술이 격동기에서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기가 참 어려워요."

-산업과 기술 급변하는데 따라 사회와 문화, 가치관과 윤리의식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4차 산업혁명은 가치관의 변화, 사회 체제 혁신과 조응하며 전개될 것인데, 그 영향이 유례없이 커서 산업, 경제, 고용, 사회, 정부의 형태를 모조리 바꾸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날 겁니다. 이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분절, 고립과 배제 현상이 물질적 성장의 긍정적 효과를 상쇄하면서 국가적 부담으로 얹히게 될 것이므로 국가적 국제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심화로 인한 불만과 좌절, 갈등의 심화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포용적 성장이 중요해요. 또한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 현재 지구촌이 당면한 기후위기, 자원위기, 환경오염 등 글로벌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때 인류문명의 지속가능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봐요. 구름 잡는 얘기 같기도 하지만, 세계사 속의 산업혁명에서 인류공동체가 상생과 번영의 길로 갈 수 있었음에도 결국 경제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파국의 길을 걸었던 행로는 인간 본성에 연관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어두움을 떨치고 밝은 미래를 찾아나서는 것도 또 다른 인간 본성에 희망을 걸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역사를 써야 하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역사 쓰기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고 배려와 협력이 아니겠어요?"

-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 교육 방향이 제대로 잡혔다고 보십니까.

"4차 산업혁명시대는 STEM, 즉 과학·기술·공학·수학이 기초가 되고 거기에 인문학적 소양이 갖추어진 인재를 요구합니다. 모든 산업이 AI, 빅데이터 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어서 선진국은 수학과 과학 교육의 비중을 강화하고 대학 입시에서도 그 비중이 확대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 현실은 수능시험에서 이들 수학, 과학 교과목의 비중을 계속 축소시키고 있어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경쟁력 비교를 보면, 2004년에서 2014년까지 세계 500대 대학에 든 한국의 대학 수는 8개에서 10개로 늘어났는데, 중국의 경우에는 13개 대학에서 37개 대학으로 늘어났어요. 한국의 대학은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했으나 질적으로는 오히려 하향세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갖가지 규제 등 대내외 사정으로 학과 설립이나 정원 조정이 여의치 않아서 인공지능, 정보통신, 컴퓨팅 전문가 충원에서도 갈 길이 멀어요. 1993년에 도입된 수학능력시험 제도는 이후 12차례 개편을 거쳤으나, 국가 주도의 선다형 출제 등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잖아요. 실제로 그 비중은 계속 축소되고 있고, 몇 년 전부터 입학사정관제도와 학생부종합전형 제도 도입으로 학생부 전형의 비중이 높아졌으나 창의적인 인재 양성을 위한 개혁과는 거리가 멉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초·중등 교과에서는 수학·과학·기술 교육의 컴퓨팅 사고력이 크게 강조되고 있잖아요. 앞으로의 학교 교육에서는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사람이나 컴퓨터가 효율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사고과정이 핵심이고, 빅데이터에서 질서를 찾아내고 패턴을 발견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론은 간단한 게 아니에요. 또한 이미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대학 정원수보다 적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고, 2025년이면 고교 졸업생 수가 39만 명으로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격동적 변화 속에서 더 늦기 전에 대학교육 혁신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80%는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대학입시제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동안 성과는 별로 없었어요.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질적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우리 대학의 과학기술 교육의 현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때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요즈음은 오히려 '문송'(문과라서 죄송)이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문과 이과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입니다. 세계경제 포럼은 글로벌 기업의 인사, 전략 기획 담당자를 대상으로 '2020년에 기업 근로자가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기술이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새로운 인재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 비판적 사고, 창의력, 사람 관리, 타인과의 의견 조정, 감성지능, 판단과 의사결정, 서비스 지향성, 협상능력, 인지적 유연성이 꼽혔고 이들 요소를 '사회 정서 학습기술'(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Skills)이라 명명했어요. 세계적인 혁신 대학으로 하버드대학보다 입학이 어렵다는 미국의 미네르바 스쿨은 입학 후 1년 동안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작용하는 스킬을 중심으로 배우고 훈련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압축성장은 우수한 인재가 있어서 가능했어요. 그러나 글로벌 추세와는 달리 초·중등 교육의 목표가 오로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고 교육은 점수 따기 선수를 기른다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잖아요. 사교육에 대한 맹신도 도를 넘어선지 오래됐고, 시험점수에 매달리는 교육과정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은 설자리가 없어요. 아인슈타인은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은 외우지 말라'고 했다는데, 우리는 여전히 암기 위주의 시험공부에 매달리고 있어요. 한 마디로 교육 현장의 세계적인 혁신 추세와는 거리가 너무 멉니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Evaluation of Educational Achievement)가 4년마다 펴내고 있는 '팀스'(TIMSS; 수학 과학 학업성취도 국제비교평가) 보고서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수학의 성취도에서 최상위권이던 한국 청소년(9세와 13세)은 취업 후에는 최하위의 직무 역량을 보입니다. 최근 실시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과 직업 전망'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1%가 우리 대학교육이 미래지향적이지 않다고 답했고 82%는 현재의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어요."

-우수한 인재들이 입시에서 의대에만 몰리는 것은 문제 아닌가요? 의학계에도 뛰어난 인재가 필요하지만, 심각한 편중 현상을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인지요.

"우수 인재가 특정 분야로 몰리는 현상은 예전에도 있었으나, 최근 의대 편중현상은 특히 뚜렷하게 고착화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최근 서울과학고에서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를 대상으로 교육비를 환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이 이슈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그동안 지속적으로 일어났던 사례에 대해 강력한 조치가 취해진 것인데, 이런 방식으로 우수 인재의 의대 쏠림 현상이 해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이공계 진학보다 의대 진학이 장래가 보장된다고 하는 현실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면 의사보다 과학자나 엔지니어의 삶이 크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이 중요할 텐데, 대학과 기업의 연계가 활발한 미국의 경우에는 최고의 유망직업 1위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꼽혔어요. 청년들에게 의사, 변호사, 공무원이 청년들에게 유망직업으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시대의 전문직 선택과는 큰 괴리를 보이고 있는 것이죠. 대책으로는 산학연 연계에 의한 혁신 생태계 조성으로 우수 인재가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겁니다. 그런데 현 상황으로 보면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통합적이고 근본적인 혁신이 일어나야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의대로 진학한 우수 인재가 임상에 치우쳐 의과학이나 의공학의 융합형 연구를 하지 못하는 경우 사회적으로 손실이 크므로 의과학과 의공학 연구를 대폭 활성화하는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무적인 소식도 있어서, 지난 9월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의 세계경쟁력 분석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과학경쟁력이 세계 3위로 랭크됐던데요. 이러한 순위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작년 7위였는데 4단계 올랐으니 반가운 일입니다. 참고로 같은 IMD 평가에서 기술 인프라 부문의 순위는 2018년 대비 8단계 하락한 22위가 되었어요. 우리나라는 이런 순위 발표에 관심이 큰 편이지만, 실은 순위 선정방식의 한계로 인해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과학 경쟁력 평가는 작년에 비해 설문 지표의 수가 반으로 줄었는데, 순위가 낮았던 지표가 삭제된 것이 순위 상승에 기여한 측면이 있어요.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지표는 연구개발비, 연구인력 수, 특허 수 등이죠. 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것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표이고 정부가 잘 하는 겁니다. 그러나 연구비 증액에 못지않게 연구비의 집행을 효율화하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관리의 규제를 합리화하고 간소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연구 인력에 대해서도 양적인 지표이므로 한계가 있어요. 질적인 수준을 높이려면 과학기술인들이 자신의 전문직에 자부심을 갖고 전념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경쟁력 순위에 기여한 요소로서, 내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올해에 비해 17.3% 증액된 24조원(24조874억원)이 되었습니다. 사상 최대 증가율이고, 정부 예산 중 R&D 예산 비중이 OECD 국가 중 1~2위입니다. 그러나 최근 첨단기술 제품 수출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연구개발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습니까.

" 답은 과총이 지난 1월 '연구개발 성과'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 투입 대비 성과가 미흡하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어요. 총 응답자 4310명 중 50%가 연구개발 성과가 높다고 답했고, 보통이라고 답한 비율은 34%였습니다. 과학기술계가 아닌 일반시민의 경우에는 연구개발 성과가 크다고 답한 비율이 38%였어요. '국가연구개발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대한 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기적, 경제 기여도 중심의 정량적 성과평가 제도'가 22%로 가장 높았어요. 전통적인 과학기술혁신의 주기(cycle)는 기초연구-응용-기술개발 단계로 구분됩니다. 70년대 이후 우리의 과학기술 발전은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단기적 역주기 경로를 밟은 것이 특징이에요. 90년대부터 그 한계는 예고되고 있었고, 순주기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동안 과학기술이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 차원에서 나아가 원천적 탐구와 개척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으나 진전은 더딥니다. 연구 주체간 협동연구가 활성화 되도록 문화적 제도적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최고 수준인데 노벨상 소식은 없다는 얘기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데요.

"한국연구재단의 지난 10월 조사에 의하면, 국내 과학자 17명이 노벨상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논문 피인용 수, 국제저널 게재, 상위 1% 논문 등이 기준이었으나 실제 노벨상 수상은 단순히 개인의 연구실적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노벨상 수상에는 평균 31년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우리나라의 연구역량 누적은 선진국에 비해 짧습니다. 미션을 정해 놓고 속전속결로 달려가는 추격형 전략에서 벗어나고, 단기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의 기초과학 지원을 강화하고 도전과 실패를 허용하는 연구풍토와 지원정책으로 전환된다면 노벨상 수상의 결실이 맺어질 겁니다. 여기서 덧붙일 것은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사회혁신에 눈을 돌려 삶의 질 향상, 공공복지, 안전, 보건, 의료, 환경, 자원, 기후위기 등 사회적 목표 달성에 기여해야 합니다. 이런 역할을 잘 하는 것도 노벨상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봐요."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넘기 위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에 대해 대대적인 R&D 투입을 예고했습니다. 외교 문제의 파고를 넘는 미션이 과학기술 연구인들에게 떨어졌는데요, 정부는 단기성과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정부는 그동안 소재부품 산업의 국산화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R&D 투자도 늘렸으나 수입 의존도는 여전히 높아요. 반도체 장비와 소재의 경우 국산화율이 당초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고, 특정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습니다. 국제 분업체제와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어서 경제성과 시간적 비용적 측면에서 쉽지 않았던 측면도 있었죠. 21세기 제조업의 추세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형성입니다. 즉 여러 나라의 산업경쟁력의 총화로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것으로 어느 특정국가 제품이 아니라 '메이드 인 더 월드'(Made in the World)가 되고 있어요. 이처럼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 연결성이 증대되고 글로벌 가치사슬이 작동되는 상황에서는 국제통상의 변수에 따라 무역 실적이 영향을 받게 됩니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끼어있는 어느 나라가 저성장이나 경제 침체를 겪는 경우, 또는 어떤 의도로 행동하는 경우, 무역 파트너는 물론 직간접으로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글로벌 가치사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다자간 생산과 통상에서 효과적인 제도가 구축되고 국가간 신뢰와 협력이 전제돼야 합니다. 글로벌 가치사슬에 엮이고 국제 분업이 대세인 산업 환경에서 한 국가가 주요 산업의 핵심요소를 모두 갖춘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통상외교가 중요하고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하는 국가의 다변화도 필요해요. 또한 외부로부터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자체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내부화 전략이 불가피합니다. 따라서 국내 산업의 생태계 혁신에 의해서 기업 차원의 내부화 역량을 조속히 강화하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문제는 고도의 기술집약적 부품과 소재를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해야 가능할 것인지를 정확히 가늠하는 일인데요,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서 연구개발의 생산성을 높이는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되 단기적인 지원 정책 수단을 강화해야 할 겁니다. 정책 지원에서는 시장 실패 관리 차원에서 나아가 위험 부담이 큰 기술 프로젝트에 기업이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합리화해야 합니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리엔지니어링이 필요해요. 기초과학연구부터 R&D 전주기의 구조적 혁신을 이뤄야 하고, 규제 혁신과 우수 인력 양성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런 구조적 혁신은 단기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재정 투입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소재 무기화 전략 가능성에 대응해 정부가 예산을 대폭 늘린다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단기성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산 확보와 집행, 연구개발 과제 선정, 연구개발 관리, 인재 양성 등에 대해 현장에서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에 의해 상황을 파악하고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보완하는 치밀한 거버넌스가 필수적입니다."

-우리 과학기술계는 기후위기나 UN 지속가능발전 목표(SDGs 17) 같은 글로벌 이슈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UN 지속가능발전 목표의 절실함에 비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세계적으로도 이들 이슈가 국제적 화두가 된 지는 30여년이 되지만 이슈 해결을 위한 행동은 미흡하기만 합니다. 한국이 전반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발전 등의 지구촌의 거대담론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특히 발전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국가 발전전략도 그러했고, 국민의식도 그러했고, 어느 나라보다도 발전 지향적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원빈국으로서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빈곤상태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경제-사회-환경의 균형적 발전에 대한 개념 정립은 설자리가 없었습니다. 과학기술도 단기간에 산업경쟁력을 키우고 경제성장을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지구공동체의 지속가능발전 패러다임과 그것을 향한 실천에는 여력이 없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심리적으로 지구상의 보통 사람들은 기후위기 해결은 너무도 장기적인 차원의 거대담론이라서 77억 세계 인구의 하나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분야에서 일한 배경에서 보실 때 오늘날 기후위기 등 환경문제와 과학기술의 관계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산업혁명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산업기술의 발전은 환경오염과 불가분의 관계였어요. 산업발전이 새로운 환경 이슈를 낳고, 한편으로 과학기술에 의해 일부 환경문제를 풀어가는 식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그 충격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어요. 과학기술계는 연구개발 활동에서 지속가능발전 개념을 반영해 지속가능한 과학기술혁신을 추구해야 합니다. 환경문제에서 모든 경제주체는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예요. 따라서 모든 경제주체의 의식 전환과 실천에 의해 경제-사회-환경 사이의 조화와 균형이 이뤄져야 합니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간하는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는 경제·사회·환경·지정학·기술의 다섯 개 분야에 대해 글로벌 리스크를 평가하고 있어 시사적입니다. 사회 분야 리스크도 다수가 환경 리스크일 정도로 경제 전문가 포럼이 내는 보고서임에도 환경 리스크의 비중이 커요. 이들 리스크를 어떻게 예방하고 해소하고 적응하는가가 국정 운영에서도 관건인데, 리스크 '관리'(management)라는 용어 대신 리스크 '거버넌스'(governance)로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리스크 거버넌스의 부실은 정치적 리스크를 유발하게 돼요. 과학기술혁신도 새로운 리스크를 유발하는 상황이라서,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안전과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과학기술을 지향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라고 봅니다."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이자 여성으로서 교수, 장관, 국회의원, 민간단체장을 두루 역임하셨는데, 모든 자리에서 남다른 역할을 하셨지만 어느 자리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셨습니까.

"과학자 출신으로 대학에서, 정부에서, 국회에서, 민간단체에서 멀티 플레이어의 삶을 살았던 것은 저에게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전공은 화학이었지만 30여 년 간 대학에서 과학사(科學史) 교양과목 강의도 하면서 학문적으로는 문명세계로 경이로운 지적 탐구에 가장 끌렸습니다. 일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역시 장관 시절이었지요.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 그 성과를 보는 성취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정책 수립과 추진과정에서 갈등 조정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대화와 소통 끝에 상생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더 큰 보람을 주었고, 그래서 애착이 더 컸습니다. 천연가스버스 도입, 낙동강 등 3대강 수계 특별대책, 환경산업 진흥,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 등이 특히 기억에 남고 지금까지 환경부 가족과의 만남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어, 무엇보다도 고맙게 생각합니다."

-과총이 올해 벌인 역점 사업은 무엇인가요.

"과총의 2019년 역점 사업은 '미세먼지 국민포럼'과 '플라스틱 이슈 포럼'이었습니다. 각각 6회 이상의 시리즈로 열면서 온라인 소통도 하고 실천계획도 도출했습니다. 과총이 환경 이슈를 다룬 계기가 됐던 것은 2018년도 과총이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기술 뉴스'에서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이슈가 나란히 1, 2위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10대 뉴스 선정에는 전문가 36명의 직접 참여와 온라인상에서 7843명이 참여해서 선정된 것이었습니다. 마치 환경 이슈가 과총으로 저를 따라온 것 같아서, 사명감을 갖고 과학기술과 환경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과총 회장으로서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자평하신다면.

"벌써 3년이 다 되어가서 언제 이렇게 세월이 갔나 싶습니다. 평가는 다른 분들이 하시겠지만, 저로서는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습니다. 과총은 600여개의 과학기술 학회와 단체, 공공, 민간 연구소, 그리고 13개 지역연합회, 18개국 재외 과협으로 구성된 거대조직입니다. 500만 과학기술인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하는데, 그 500만명이 어디서 나왔나 보니 기술을 포함해 과학기술 학위를 받은 분들이 500만 명이나 된다는 겁니다. 기초과학에서 산업까지 스펙트럼이 넓다보니 '소통과 통합'의 가치 실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취임 당시 슬로건이 '우리 함께'였습니다. 회원 단체가 주인의식을 갖고 '우리 함께'로 뭉칠 때, 과총의 시대적 소명을 다 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동안 4차 산업혁명기의 대전환기에서 과학기술 이슈별로 공론화장을 열고, 규제개선과 인력양성, 정책제안 등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부 등 다른 부문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노력을 했습니다. 포럼, 세미나, 전문가회의 등 300여 차례의 국내외 모임을 개최했고, 축사 전문으로 행사에도 많이 다녔지요. 과총 안팎에서 '과총이 변했다'고 격려를 해주실 때 보람을 느낍니다. 과총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제 인생의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말했었는데, 학회와 단체 등을 위해 미약하지만 봉사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느끼면서 일했습니다. 행복에 관한 연구의 결론을 보면,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인생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동분서주 하면서 시간을 쪼개어 책을 쓰고 나니 뭔가를 남긴 듯한 기분이 듭니다. 원고를 줄였는데도 590 페이지가 넘는 책을 보고서 '이걸 어떻게 했을까' 싶기도 해요. 쉬면서 즐기면서 일하는 것을 권하는 세상이지만, 저는 아직도 매순간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벌레 기질을 못 버리는 거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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