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나경원 원내대표 임기 종료'를 결정한 것이 '월권'이라는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4일 한국당 당헌·당규를 살펴보면 당헌 제55조에 의원총회는 의원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고, 원내대표 선출 기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당규 제24조 제3항에서 국회의원의 잔여임기가 6개월 이내일 때에 원내대표 임기 연장 여부를 의총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단,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 의장 선출 규정 제3조 제1항에서는 원내대표 선거일을 당 대표가 선거일 전 3일에 공고한다고 돼 있다. 한국당 사무처는 관련 규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당 대표가 선거일을 공고하게 되면 원내대표 임기 연장 없이 새로 선출하는 절차를 밟게 되고, 당 대표가 원내대표 임기 연장을 동의하면, 의총에서 임기 연장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고 해석했다. 즉 당 대표의 동의 여부를 핵심으로 본 것이다. 한국당은 앞서 원내대표 임기 연장 논란이 일었을 때도 당 대표의 공고 권한을 인정해 예정대로 경선을 진행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한국당 원내에서는 황 대표와 최고위원회의가 당헌·당규를 과잉해석해 대표의 권한을 넘어서는 결정을 했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김태흠 의원은 공개적으로 황 대표를 비난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한국당 의총에서 공개발언을 신청한 뒤 "저도 나 원내대표를 좋아하지 않지만 최고위 결정은 너무 황당하다"고 문제 삼았다. 김태흠 의원은 "현 원내대표가 연임이 되든, 차기 원내대표 선출 경선을 하든 그 권한은 의총에 있다"며 "당 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들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서 후보 간 유·불리 논란 소지를 없애고자 (당 대표에게) 선거관리위원회 같은 역할을 하라고 선거일 공고 권한을 준 것 뿐인데 '절차적 권한'을 과도하게 해석했다"고 비판했다. 김태흠 의원은 또 최고위에 "임기 연장 여부 결정을 다시 의총에 되돌려달라"면서 "이건 선례가 되고 관례가 된다. 다시 (최고위 결정을) 되돌려 놓기를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김태흠 의원은 발언을 비공개로 하자는 요청이 나오자 "이 문제가 옳다고 보느냐. 이게 살아있는 정당이냐"고 반문한 뒤 "이래서야 국회의장이 함부로 (국회법을) 유권해석 해서 국회를 이끌어가는 것을 비판할 수 있느나"고 했다.
당의 강도 높은 쇄신을 요구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세연 의원도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최고위의 결정이 '당 지배구조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김세연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 공고를 당 대표가 한다는 규정을 과대해석해서 나온 문제"라며 "원내대표와 다른 대표성을 가진 당직자가 후임 원내대표 선출 과정을 관리하라는 것"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김세연 의원은 "이런 식으로 당 운영이 되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며 "당이 말기 증세를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판사 출신인 3선 홍일표 의원도 황 대표와 최고위의 당헌·당규 해석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규정들을 종합해보면 당 대표의 공고에 관한 권한은 선거일을 정하는 절차상의 권한일 뿐이고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을 결정할 권한까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원내대표의 선출과 임기 연장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의총에만 있다"고 단정했다. 홍 의원은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 여부가 문제가 된 경우에는 의총에서 먼저 결정하고, 임기연장을 불허했을 때 당 대표가 신임 원내대표 선거 공고를 해야 한다"면서 "결국 의총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최고위가 나서 임기연장을 불허하고, 신임 원내대표 선거공고를 하는 것은 권한 없는 일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4선인 정진석 의원은 이날 한국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 앞서 박완수 사무총장에게 "정치 혼자 하느냐. 정치 20년씩 한 나도 이렇게 대표와 원내대표가 화합 못 하는 건 처음 본다"면서 쓴소리를 했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의 불화설을 뜻하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황 대표를 향한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지만 원내대표 교체 결정이 뒤집히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 원내대표가 임기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상 재논의 절차를 밟지 않을 것이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황 대표는 이와 관련 "당 조직국에서 법률 판단을 했고 거기에 따라서 저도 판단해서 처리한 것"이라며 '월권'이라는 지적을 인정하지 않았다.김미경·윤선영기자 the13ook@dt.co.kr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4일 청와대 사랑채 앞 천막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연석회의에 나경원 원내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