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사업 초창기, 통일기반 닦을 기회 놓쳐 아쉬워" [노재봉 前국무총리에게 고견을 듣는다]

과거 5개국 컨소 유라시아철도 연결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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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사업 초창기, 통일기반 닦을 기회 놓쳐 아쉬워" [노재봉 前국무총리에게 고견을 듣는다]
노재봉 前국무총리

박동욱기자 fufus@


[]에게 고견을 듣는다

노재봉 前국무총리


노재봉 전 총리는 1990년 한국형고속철사업(KTX)을 매개로 통일의 기반을 닦아보려고 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중도에 엇나간 결정으로 계획이 무산됐지만 지금도 매우 아쉬워한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할 때인데 나는 비서실장으로서 정책 결정에 관여는 안 된다고 여기고 청와대 정부회의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서울-부산간 고속철을 놓는다는 발표가 나온 거야. 내가 대통령방으로 다락같이 뛰어들어갔지. '각하, 어쩌자고 서울-부산 고속철을 발표하셨습니까'라고 했어요. 그 전에 프랑스 떼제베도 타보고 그랬거든. 대통령이 왜 그러느냐 그래요. '서울과 부산이 420km입니다. 300km 속도면 한 시간 반이면 갑니다. 그런 것을 만들겠다고 천문학적인 돈을 씁니까, 차라리 고속도로를 하나 더 놓는 게 낫습니다.' 그랬지요. 대통령이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까 일리가 있거든. 발표를 해놨는데, 그럼 어떡하냐고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수정 발표를 하시면 된다고 했지요. 그걸 어떻게 수정하느냐 그러시는 거예요. '밑으로는 해저터널을 통해 일본과 연결시켜 물동이 그리로 오게 하고 북으로는 북한을 통해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시키면 된다'고요. 당시 북한에 대해서는 소련도 아직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고르비(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를 통해 북한에 압력을 넣읍시다'라고 했어요."

노 전 총리의 구상은 정치학자로서 지정학적 관계에 밝은 데다 많은 외국 견문에서 쌓인 혜안의 결과였다. 당시는 공산주의 전체주의가 몰락하고 있던 시기였다. 북한은 경제난에 상시 시달렸고 '중공'(중국과는 1992년 수교)은 아직 경제개발이 본격 궤도에 오르기 전이었다. 국제정세를 이용해 한반도를 관통하는 고속철을 놓으면 평화 기조가 유지되고 통일로 가는 기초가 될 것으로 봤다.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구상했어요. 프랑스 독일 일본이 참여하고 미국은 협조를 받고 하면 우리를 포함해 5개국이 되잖아. '지금이 찬스입니다. 우리도 로마처럼 좀 크게 놀아보자고요'고 한 거예요. 고속철로 이북을 통과하면서 이북을 아우르고, 당시 북한 경제가 엄청 어려웠거든. 지금 시진핑이 일대일로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30년 전에 그런 구상을 한 거라고. 대통령이 눈이 번쩍 뜨인 거야. 그래서 수정 발표를 하지 않았어? 당시 소련(1990년 9월 수교) 제1부상도 국내에 들어왔었거든. 그래서 그랬어요. '너희들 식량 필요하지 않냐. 우리가 100만톤 줄게. 또 시베리아 땅 좀 내다오. 50년 조차 좀 하자.' 그랬어요. 이북의 노동력을 거기다 집어넣어가지고 농사를 지으려고 했던 거예요. 그때는 그게 가능했어요."

하지만 그 구상은 무산됐다. "YS가 망쳐놨다고. 컨소시엄이 뭐고 프랑스에 줘버렸다고. 거기서 무너져버렸어요. 북한을 통해 대륙으로 뚫고 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의 협력이 필요하거든.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그 당시 동독 붕괴 직후에 셰바르드나제가 소련 외무상으로 처음 방한했거든. 그 때 내가 그랬어요, 이제 무상으로 지원 못해주겠다고. 너희들 개혁 안 하면 동독 꼴 난다고 했어요. 대화 내용을 비공개로 하기로 했는데, 그 사람이 그걸 발표를 해버린 거야. 거기서 처음으로 나온 게 바로 '흡수통일'이야. 그 말은 우리가 쓰고 싶어도 안 쓰고 있었다고. 그런데 소련이 작성한 문서에 흡수통일이라는 말이 나와요, '우리는 흡수통일을 반대한다고.' "

당시 대한민국은 80년대 10%의 고도성장에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른 후라서 국력이 크게 신장돼 있었다. 반면 공산권은 위축되고 혼란스러웠다. 돌이켜보면 당시가 통일의 기회였다. 노 전 총리는 "베스트 찬스였지. 중국도 돈이 없을 때거든. '한국이 어떻게 저렇게 발전했냐, 한국으로부터 무얼 배워야 하느냐' 그럴 때였다 말이에요. 고르비가 우리에게 돈 빌려달라고 애원하던 시절이었어요. 참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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