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제도 개선 병행해야 시장 빅점프"

IITP, ICT 정책포럼서 한목소리
"제대로 된 게임 법칙 만들어야
산업계 역동적으로 신시장 열어
콘텐츠 부족… 한류 적극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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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제도 개선 병행해야 시장 빅점프"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IITP 'ICT기술과 법·정책포럼'에서 이성엽 고려대 교수(포럼 공동위원장·맨왼쪽)와 전문가들이 실감형 콘텐츠 법·정책 관련 토론을 하고 있다.

IITP 제공

"실감형 콘텐츠, 디지털 헬스케어 같은 혁신시장은 어느 순간 빅점프 하듯이 열릴 것이다. 적기에 시대에 올라타려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유연한 R&D(연구개발)와 지속적인 제도 개선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기기·플랫폼·네트워크·콘텐츠의 결합과, ICT와 타 기술·산업과의 '융합'이 필수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은 유난히 취약한 면을 드러내고 있다.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융합 영역에서 새로운 시도를 막는 포지티브 규제와, 산업 정책을 정부가 쥐고 있으면서 부처간 협업이 약한 구조가 맞물린 결과다.

26일 정보통신기획평가원(원장 석제범, IITP)이 개최한 'ICT기술과 법·정책포럼'에서 전문가들은 혁신기술이 산업과 사회에 빠르게 적용돼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으로 이어지려면 R&D와 법·제도 개선이 반드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IITP는 미래통신·전파, SW·AI, 방송·콘텐츠, 차세대 보안, 디바이스, 블록체인 등 미래 기술 관련 법·제도 개선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6월 포럼을 발족했다. 이성엽 고려대 교수(기술경영전문대학원)와 석제범 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날 포럼은 실감콘텐츠 서비스와 디지털 헬스케어를 주제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이경원 동국대 교수는 "실감형 콘텐츠의 경우 기술과 비용 문제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세계적으로 법 이슈가 불거지고 있다"면서 "주어진 제도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답은 해외진출밖에 없는 만큼, 글로벌 시장을 내다본 유연한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언어장벽이 해외 진출의 걸림돌이었지만 유튜브에서 확인됐듯이 더 이상 아니다. 실감형 콘텐츠는 글로벌화가 더 쉬울 것"이라면서 "여러 국가의 제도 환경을 정리해 전략과 기술을 유연하게 준비하고, 국내에서도 제도 개선을 이어가야 어느 순간 갑자기 열리는 시장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준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법·정책으로 제대로 된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줘야 산업계가 역동적으로 신시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 면서 "5G 기반 원격조정은 항만·건설 분야의 안전규정과 사고처리책임, 드론 원격조정은 사생활 침해와 산업시설 보안 이슈, VR 사이버스페이스는 사이버머니 도난 등 사이버범죄 이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변화를 내다본 제도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승우 중앙대 교수는 "5G 상용화 이후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의 결합이 빠르게 일어나고, 결국 돈은 콘텐츠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이에 반해 정부의 VR·AR(가상현실·증강현실) 산업 정책은 디바이스 분야에 집중돼 있고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콘텐츠와 디바이스 정책의 융합적 접근이 필요하고, 한류를 잘 활용해야 한다"면서 "연 600억원 규모의 문화부 문화예술 관련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다부처 공동사업을 통해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워치, 스마트 글래스, 가상현실 기기 등 웨어러블 기기의 인체 안전성 기준 마련과 표준화, 실감콘텐츠·실감미디어 세계시장 선점을 위한 표준화와 품질 인증체계 강화도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IT강국을 외쳤지만 수익은 다른 나라가 가져갔다"면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날 전문가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활성화를 위해 법·제도 정비와 사회적 합의를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학 서울아산병원 헬스이노베이션빅데이터센터장은 "과기정통부의 의료AI R&D 프로젝트인 '닥터앤서'의 경우 26개 병원과 22개 ICT 기업이 참여하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대형 국가 컨소시엄 사업인데, 결과물이 병원에서 실제 활용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다"면서 "현재 개정 논의 중인 개인정보보호법뿐 아니라 데이터 연계, 데이터 이동권까지 데이터 활용 전체를 막는 규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김의석 김앤장 변호사는 "앞으로 디지털 헬스와 관련한 가장 큰 변화는 데이터 측정에서 일어날 것"이라 면서 "이 때문에 글로벌 IT공룡들이 앞다퉈 디지털헬스 기기와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강력한 의료기기 규제가 데이터 측정 분야의 혁신을 막고 있다"고 강조했다.

질병 진단·치료·경감·처치·예방 목적의 모든 제품을 의료기기로 규정해 관련 규제를 적용하다 보니 IT기업들이 아예 제품을 내놓지 못 한다는 것. 반면 미국은 시행재량을 인정해 규제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제품은 허가 없이 시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어 김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 흐름이 막혀 있다 보니 디지털헬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 하고 있다"면서 "원격의료 규제 때문에 디지털헬스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환자 데이터 측정이 막힌 부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인영 가톨릭대 교수는 "AI 기술을 개발해도 의료에 적용하려면 인증과정과 규제가 너무 복잡하다"면서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고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받으려면 비용과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서 R&D를 통해 모바일앱을 만들어도 플레이스토어에 올릴 수 없다. 진단용 앱이 아니라 간단한 알고리즘 앱이라 해도 규제기관에서 바로 연락이 온다"면서 "의료기기로 묶어둘 게 아니라 활용하면서 나오는 이슈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태균 보건산업진흥원 단장은 "결국 사회적 합의가 문제인데, 건보공단·심평원·암센터·질병관리본부의 데이터를 연구에 쓰기 위한 보건복지부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의 경우 지금 시범단계인데도 플랫폼 운영방향 의결권을 가진 정책심의위원회에 참여하는 시민단체들의 우려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면서 "데이터 3법이 통과돼도 관련된 여러 법을 바꾸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는 "디지털헬스에는 진료·유전체·라이프로그(일생생활) 등 3가지 데이터가 핵심인데,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만드는 진료 데이터가 0.4테라바이트(TB)라면 유전체는 6TB, 라이프로그는 1100TB에 달한다"면서 "글로벌 IT기업들은 라이프로그 데이터 확보 전쟁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밀의료가 완성되려면 라이프로그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민감 데이터와 아닌 데이터를 명확히 구분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구분이 모호해 도저히 사업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 대표는 "미국 우버 개발자들은 가까운 곳의 의사를 부르는 왕진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2016년 병원 데이터를 외부에 보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지만 유무선 열람금지 규정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환자 동의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활용을 제한하는 '통지와 동의' 조항도 디지털헬스 산업 성장을 막고 있다"고 밝혔다.

석제범 IITP 원장은 "지난 4월 5G 세계 첫 상용화 성과는 2009년부터 정부와 전문가들이 같이 노력해온 결과이고, 내년에도 6G, 차세대 AI, 양자정보통신 등 장기 과제를 정해서 R&D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혁신 제품과 서비스가 사회와 산업에 확산되려면 법·제도 준비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R&D 기획단계부터 기존 법·제도를 분석하고, 개선방향을 모색해 R&D 결과물이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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