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DT현장] 특허청장이 `약장수` 된 이유](http://contents.dt.co.kr/images/201911/2019112102102269731001[1].jpg "[DT현장] 특허청장이 `약장수` 된 이유")
정답은 특허청이다.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정부 부처다. 다만 '특허'라는 단어 때문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하다. 1977년 개청한 특허청은 특허·실용신안·상표·디자인 등 지식재산 심사와 심판을 수행하는 지식재산 주무 부처다. 직원만 1700명으로 웬만한 정부 부·처·청 중 가장 많다. 심사 수수료 등으로 연간 5000억원의 돈을 번다. 이처럼 특허청은 다른 부처와 비교해 남다른 면이 많고 독특한 부처다. 기관 위상도 국내와 해외에서 판이하게 다르다.
무엇보다 국내에선 주목받지 못하는 부처다. 특허가 전문 분야이고, 발명인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과 큰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국정운영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역대 청와대 조직에서 '지식재산 보좌관' 또는 '지식재산 비서관' 등 지식재산을 타이틀로 한 직위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 소위 '아싸'(아웃싸이더)인 특허청이 해외에 나가면 '핵인싸'(아주 큰 인싸이더)로 급(級)이 뒤바뀐다.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과 대우를 받는 국내 유일의 정부 기관인 셈이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소위 강대국과 맞먹는 대접을 받을 정도다. 이런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글로벌 세계 지식재산 분야를 주도하는 선진 5개국 특허청(IP5)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막강한 발언권과 리더십을 발휘하는 '빅 마우스'로 통한다.
취임 이후 첫 해외 출장을 다녀온 특허청장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해외에 나가보니 국내와 달리 글로벌 지식재산 분야에서 우리나라 위상이 이렇게 높은 줄 정말 몰랐습니다. 특허청장이란 이유로 해외에서 특별대접을 받기는 공직생활 중 처음이라 어리둥절했어요"라고 흐뭇하게 웃는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 주요 선진국은 지식재산을 무기로 산업 지배력을 강화하고, 미래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 수출규제와 미·중 무역분쟁 등 주변국의 기술패권 경쟁에 직격탄을 맞아 국가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자. 영국은 근대적 개념의 특허제도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덕분에 증기기관을 발명해 1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다. 미국 역시 링컨, 레이건 대통령 시절 친(親)특허정책으로 전기·컴퓨터 등의 기술을 선점해 2차·3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으로 세계 패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가온 4차 산업혁명의 승자는 누가 될까. 그건 바로 강한 지식재산으로 무장하고 지식재산을 강력히 보호하면서 해외 지식재산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잘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혁신성장을 국가 경제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조차 특허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지식재산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일원화된 '지식재산 컨트롤타워' 구축도 나몰라라 했다.
이렇다 보니, 세계 4위 특허 출원국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특허 품질 저하와 지식재산 무역수지 적자 지속 등 지식재산 생태계는 점점 흔들렸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9월 취임한 산업부 관료 출신 박원주 특허청장이 특허의 진면목과 가치를 터득한 이후 '특허 약장수'로 동분서주하면서 지식재산 생태계가 서서히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취임 이전만 해도 특허를 잘 알지 못했던 박 청장이 '국가 미래가 지식재산에 달려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그를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특허 중요성을 설파해 갔다. 당시 그를 만났을 때 했던 말이 생생하다. "요즘 약(?) 엄청 팔고 다닙니다."
그가 약을 판 지 어언 1년이 지나자 의미있는 변화가 하나 둘 나타났다. 지난 9월 '특허등록 200만호'를 달성했다. 세계에서 7번째다. 문재인 대통령이 '200만호 특허증'에 직접 서명하는 우리나라 특허 역사에 남을 상징적인 행사도 열렸다. 특허청 명칭 변경도 추진했다. 지식재산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그에 걸맞게 특허청의 혁신 의지를 담아 '지식재산혁신청'으로 간판을 바꿔 달겠다는 것이었다. 비록 문체부, 과기정통부, 농식품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를 이루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지만, 시도 자체만으로 의미있는 변화였다. 최근에는 국무총리가 경제관계장관회의 개최 시 산업 관련 안건이 상정되면 반드시 특허청장을 참석시키도록 지시하는 등 '깜짝 선물'도 받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변화들이다.
남모를 서러움을 딛고 '지식재산 중심의 기술강국, 대한민국'을 위해 불철주야 노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은 '특허 약장수' 박 청장의 확신에 찬 신념과 행동이 불쏘시개가 돼 준 결과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제 대통령과 정부 부처가 화답해야 할 때다. 글로벌 기술패권 시대에 혁신성장의 씨앗인 특허를 제대로 심어 미래 세대들이 알토란 같은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기름진 옥토로 만드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준기 ICT과학부 차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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