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中 최대무기는 `14억 구매력`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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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中 최대무기는 `14억 구매력`
박영서 논설위원
명나라 시대 쇄국주의가 중국을 몰락시켰다고 한다. 세계사가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에 명나라가 나라 문을 굳게 잠궜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은 만주족 지배의 청나라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청나라는 기존 조공무역 체계를 고치지 않았다. 1793년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특사인 조지 매카트니 백작이 친서를 가지고 청더(承德)에서 건륭제를 알현했다. 청나라 조정은 그를 조공사절로서 취급해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세번 절하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번 머리를 조아린다)의 예를 요구했다. 매카트니는 이를 거부했다. 청나라 관리들은 "천자의 80세 생일잔치를 망쳤다"며 분노했다. 매카트니는 통상관계 수립이라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중국에는 무엇이든 다 있기 때문에 무역은 필요없다'는 것이 당시 청나라 지배층의 생각이었다.

청나라가 퇴보하는 사이 유럽 국가들은 산업혁명에 성공했다. 힘을 키운 유럽인들은 중국을 먹이감으로 삼기 시작했다. 아편전쟁이 터졌다. 청나라는 이 전쟁에서 처절한 패배를 맛봤다.

이후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화가 막을 올렸다. 신해혁명, 군벌타도, 만주사변, 중일전쟁이 끝나고 국공내전이 벌어졌다. 경제는 피폐해져 갔다. 내전 후 정권을 획득한 것은 공산당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58년 '대약진 운동'의 기치를 들었다. 외국의 도움 없이 오로지 인민의 힘으로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발상이었다. '10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는다'는 구호를 외쳤다. 3년여 동안의 대약진은 '대실패'로 끝났다. 이어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중국 대륙을 덮쳤다. 지금까지의 반(反)시장주의, 쇄국주의, 관료주의 등이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

복권된 덩샤오핑(鄧小平)은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제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천명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지 3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새로운 중국의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시장경제 제도의 도입, 대외개방 정책 등을 통해 중국은 공업화·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40여년 전, 중국은 시장 문을 활짝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에도 개방의 문을 더 크게 열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중국의 약속'을 의심했다. 그래서 중국은 이번 '국제수입박람회'를 통해 의혹의 시선이 풀어지기를 공공연히 기대하고 있다.

[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中 최대무기는 `14억 구매력`


지난 5일 상하이(上海)에서 '제2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가 성대한 막을 올렸다. '정치적 쇼'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번 수입박람회에선 분명히 '소비 대국화'의 신호가 감지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더 큰 개방'을 약속했다. 앞으로 15년간 중국이 수입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각각 30조 달러와 10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몇년 동안 진행된 중국 경제의 구조 전환이 효과를 거두면서 이제 중국은 '소비 대국'이 됐다. 올해 상반기 최종소비지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60%를 넘었다. 해외업체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분야는 식품이다. 이번 수입박람회에 참여한 기업이나 단체 중 식품·농업 분야는 전체의 3분의 1에 이른다.

중국이 수출대국에서 수입대국으로 바꿨다는 것은 세계에게는 '큰 기회'다. 기업 입장에선 중국 시장에 접근할 공간이 더욱 넓어진 셈이다. '14억명의 구매력'을 무기로 중국이 전 세계를 빨아들이는 모습이 선명해지고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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