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호 정경부 부장
![[박선호 칼럼] 박근혜도 ‘선출권력’이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1910/2019102102102269058001[1].jpg "[박선호 칼럼] 박근혜도 ‘선출권력’이었다")
지난 19일에도 두 입장이 맞섰다. 한 쪽의 표어는 "국민의 명령, 국정대전환 촉구", 다른 한 쪽의 표어는 "국민의 명령이다. 국회는 (검찰개혁에) 응답하라"였다. 가만히 듣고 보는 국민만 혼란스럽다. '검찰 개혁이 필요하긴 한데 …', '국정 운영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고 …', '조 전 장관이 있을 때는 차라리 반대하기 쉬웠는데…' 이 시대 중도보수를 자청한 많은 이들이 느끼는 혼란이다.
그만큼 조 전 장관은 이번 정권 집정에 있어 하나의 선명한 이정표다. 조 전 장관 탓에 현 정권의 전가의 보도였던 '적폐청산'에 흠집이 생겼다. 중도보수를 자청한 많은 이들, 특히 젊은층이 "청산하려는 적폐가 과연 무엇인가?" 처음으로 물었다. 하나 둘씩 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좌우 모두가 이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지지철회만 반길 뿐 새로운 정치역량으로 승화는 엄두조차 못내는 보수와 달리 자칭 '진보' 진영은 발 빠르게 대응 논리를 내놓고 있다.주목되는 게 '선출권력론(論)'이다. 조국사태의 본질은 검찰, 언론이라는 '엘리트 권력 카르텔'이 국민이 선택한 현 정부의 개혁에 항명한 것이라는 논리다. 이 주장은 "검찰과 언론은 과거 재벌에, 권력에 시녀 노릇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대중 선입견에 기대어 대중의 편견을 극대화한다. '엘리트 권력 카르텔' 프레임을 덧씌워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게 1966년 중국 마오쩌둥의 '사령부를 포격하라. 나의 대자보'를 떠오르게 한다. 그해 8월 1일 마오는 대자보를 통해 당내 정적을 '자본주의 수정주의자'로 규정하고, "수정주의자로 가득한 당 중앙 사령부를 공격하라"고 홍위병에게 명했다. 지금 서초동 대검찰청을 포위한 군중처럼 붉은 완장의 홍위병이 중국 인민해방군 사령부 등 주요 기관들을 하나 둘씩 포위하고 공격했다. 마오가 입으로 원했던 것은 '사회주의의 순결'이었지만 현실은 카를 슈미트가 지적한 반대자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이었다.
조 전 장관이 현직에 있을 때 '선출권력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두드러지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이 가진 흠결에 가렸다. 조 전 장관에 대한 반대 여론의 규모 자체가 '선출권력에 대한 반대'라는 논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럼 그 조국 혐오증이 지지층 이탈의 원인이었을까? 관련해 최근 한 분석이 눈에 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력주의'에 길들여진 청년들은 '시험=공정'이란 생각에 '노력의 결과가 오염된다'며 조국 딸의 상급학교 진학 행태에 분노했다." 정확한 분석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력주의에 길들여진'이라는 문구를 '공정한 성과주의에 훈도(薰陶)된'으로 바꾼다면 90점 이상의 분석이다.
본래 '성과에 따른 배분'이라는 자본주의 근본원칙 때문에 박근혜 정권이 쫓겨난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능력을, 성과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은 탓이었다. 국민은 혈연, 학연, 지연이 노력의 결실인 성과를 압도한다는 데 분노했다. 국민을 대신해 그런 부조리를 없애야 할 선출권력이 오히려 결탁해 이익을 나눴다는 데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라. 이명박·박근혜 정권 어느 정권이 선출권력이 아니었던가. 그 때 저항은 '민주운동', '진보적 개혁'이고, 지금의 저항은 '개혁에 저항'인가? 국민이 조 전 장관에 분노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그토록 증오했던 부조리, 위선이 그대로인 것을 봤기 때문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대체 뭘 개혁하자는 것인가?" 되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좌파 일각에서 "그래도 조 전 장관의 검찰개혁에 대한 순수, 도덕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마치 남다르다는 듯 '선출권력'이라는 완장을 만들어 대중을 흔든다.
그러나 그 주장을 들을수록 중도보수와 젊은 층의 의구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적폐청산으로 바로 세우려는 게 '공정한 성과주의'가 아니면 그럼 무엇이던가? 혹, 설마 …."
박선호 정경부 부장 s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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